폐허 위에 세우는 희망의 성채, 말씀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10 08:30
본문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에 최악의 난민 사태를 몰고 온 전쟁의 포화, 그리고 전 세계 5억 성도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가려는 박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시대다. 세상은 불확실성이라는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하며, 희망의 근거를 찾기 어려운 잿빛 소식들이 연일 지면을 채우고 있다.
그러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역설의 빛은 더욱 선명하게 발한다. 미사일 공격으로 교회가 파괴된 목회자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는 이웃을 섬긴 우크라이나 복음주의 교회가 ‘희망상’을 수상했다. 한때 세계 최초의 무신론 국가를 선포했던 알바니아의 땅 위에서 ‘불확실한 시대의 희망’을 외치는 유럽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이 빼앗으려 하는 바로 그 말씀이, 억압받는 성도들에게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이요, 무너진 삶의 터전을 재건하는 능력의 원천이 됨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변증은 16세기 잉글랜드의 암울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쟁기질하는 소년도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하겠다”는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혀, 목숨을 걸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는 교권의 추적을 피해 유럽 대륙을 떠돌았고, 마침내 동료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1536년, 그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남기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사역은 처참한 실패로 끝난 듯 보였다. 말씀의 빛을 전하려던 한 인간의 꿈은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증언한다. 틴들이 순교한 지 불과 2년 후, 그가 목숨과 맞바꾼 바로 그 영어 성경이 왕의 칙령에 따라 모든 교회에 비치되었다. 그가 흘린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았고, 그가 번역한 말씀은 훗날 ‘킹 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어 영어권 세계의 영적, 문화적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억압의 사슬은 끊어졌고, 짓밟힌 말씀은 생명의 강물처럼 온 땅을 적셨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가진 불멸의 생명력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박해자들이 성경을 불태우고 접근을 막는 동안, 지구 반대편 페로 제도의 성도들은 90년 만에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된 새로운 신약성경을 품에 안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성도들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의 영광을 나타낼 의의 나무’(사 61:3)가 되어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고 있다. 말씀은 단순한 문자의 기록이 아니라, 창조와 구속의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사야 55:11)
오늘의 뉴스들은 한국 교회에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5억의 형제자매가 목숨을 걸고 갈망하는 이 말씀을, 우리는 얼마나 귀히 여기고 있는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교회를 희망의 공동체로 세워가는 저들의 믿음 앞에서, 우리는 안일함에 젖어 있지는 않은가. 혼돈의 시대, 세상의 소음이 클수록 우리는 더욱 말씀의磐石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 말씀은 고난의 밤을 지나는 성도의 유일한 등불이며, 무너진 세상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유일한 설계도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말씀의 검을 굳게 붙잡아, 우리 시대의 폐허 위에 흔들리지 않는 희망의 성채를 세워야 할 때다.
그러나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역설의 빛은 더욱 선명하게 발한다. 미사일 공격으로 교회가 파괴된 목회자들이, 전쟁의 참화 속에서 고통받는 이웃을 섬긴 우크라이나 복음주의 교회가 ‘희망상’을 수상했다. 한때 세계 최초의 무신론 국가를 선포했던 알바니아의 땅 위에서 ‘불확실한 시대의 희망’을 외치는 유럽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이 빼앗으려 하는 바로 그 말씀이, 억압받는 성도들에게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이요, 무너진 삶의 터전을 재건하는 능력의 원천이 됨을 증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변증은 16세기 잉글랜드의 암울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윌리엄 틴들(William Tyndale)은 “쟁기질하는 소년도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하겠다”는 거룩한 열망에 사로잡혀, 목숨을 걸고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 그는 교권의 추적을 피해 유럽 대륙을 떠돌았고, 마침내 동료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이단으로 정죄받았다. 1536년, 그는 화형대 기둥에 묶인 채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시옵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남기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그의 사역은 처참한 실패로 끝난 듯 보였다. 말씀의 빛을 전하려던 한 인간의 꿈은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증언한다. 틴들이 순교한 지 불과 2년 후, 그가 목숨과 맞바꾼 바로 그 영어 성경이 왕의 칙령에 따라 모든 교회에 비치되었다. 그가 흘린 순교의 피는 헛되지 않았고, 그가 번역한 말씀은 훗날 ‘킹 제임스 성경’의 근간이 되어 영어권 세계의 영적, 문화적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억압의 사슬은 끊어졌고, 짓밟힌 말씀은 생명의 강물처럼 온 땅을 적셨다. 이것이 바로 말씀이 가진 불멸의 생명력이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박해자들이 성경을 불태우고 접근을 막는 동안, 지구 반대편 페로 제도의 성도들은 90년 만에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된 새로운 신약성경을 품에 안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우크라이나 땅에서, 성도들은 이사야의 예언처럼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의 영광을 나타낼 의의 나무’(사 61:3)가 되어 황폐한 곳을 다시 세우고 있다. 말씀은 단순한 문자의 기록이 아니라, 창조와 구속의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살아있는 음성이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사야 55:11)
오늘의 뉴스들은 한국 교회에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5억의 형제자매가 목숨을 걸고 갈망하는 이 말씀을, 우리는 얼마나 귀히 여기고 있는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교회를 희망의 공동체로 세워가는 저들의 믿음 앞에서, 우리는 안일함에 젖어 있지는 않은가. 혼돈의 시대, 세상의 소음이 클수록 우리는 더욱 말씀의磐石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 말씀은 고난의 밤을 지나는 성도의 유일한 등불이며, 무너진 세상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유일한 설계도다. 우리에게 허락된 이 말씀의 검을 굳게 붙잡아, 우리 시대의 폐허 위에 흔들리지 않는 희망의 성채를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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