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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의 닻, 폐허 위에 심긴 상수리나무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09 08:30

본문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대륙에 가장 큰 규모의 난민 사태를 몰고 온 전쟁의 포화, 그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영적 공허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다. 마치 거대한 폭풍우를 만난 조각배처럼, 세계는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으며 그 파도는 한국 교회에도 예외 없이 밀려온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교회는 무엇을 붙잡고 어디에 서야 하는가. 오늘의 뉴스는 파편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시대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질문을 담고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20세기 가장 어두운 그림자가 유럽을 뒤덮었던 시절, 나치즘의 광기에 독일 교회가 동조하며 소위 ‘독일 기독교인(German Christians)’을 자처할 때, 이에 맞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고백교회(Confessing Church)’다. 1934년, 칼 바르트가 초안을 작성한 ‘바르멘 선언’은 교회의 유일한 주권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임을 선포하며, 시대의 우상에 굴복하기를 거부했다. 디트리히 본회퍼와 같은 신앙의 선각자들은 값싼 은혜를 배격하고, 고난의 길일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값비싼 은혜를 선택했다. 그들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세상의 조류가 아닌 ‘말씀’이라는 유일하고도 영원한 닻을 내렸던 것이다.

오늘날 짐바브웨 목회자가 유럽을 향해 “복음이라는 닻을 내리라”고 외치는 것은 바로 이 바르멘 선언의 영적 계승이다. 전쟁으로 교회가 파괴되고 성도들이 흩어지는 절망 속에서도, 우크라이나 교회들이 난민을 섬기고 군인을 위로하며 ‘희망상’을 수상한 것은, 그들이 복음이라는 튼튼한 닻을 내렸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사역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명제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피와 땀으로 증명되는 실체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견고한 신앙고백은 개혁신앙 이니셔티브가 10년간 추구해 온 신학적 정체성 수호의 중요성과도 맞닿아 있다. 닻이 든든하려면 닻줄이 썩지 않아야 하듯, 교회의 사역은 명확한 신학적 토대 위에 서야 한다.

더 나아가, 폭풍우를 헤쳐 나가는 배는 선원들의 온전한 협력이 필수적이다. 여성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평등’을 넘어 ‘동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교회가 모든 지체의 은사를 존중하고 함께 세워져 가는 유기체적 공동체임을 상기시킨다. 남성과 여성이 각자의 고유한 부르심 안에서 온전한 동역을 이룰 때, 교회라는 배는 비로소 거친 파도를 넘어 순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논의의 근원이 되는 성경 말씀 자체에 접근하지 못하는 5억 명의 기독교인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가슴을 치게 한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펼쳐보는 이 말씀이,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생명의 양식인 것이다.

결국 교회는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존재다. 제프 파운틴이 나누어 준 작은 도토리 하나가 거대한 참나무의 잠재력을 품고 있듯, 복음은 절망의 땅을 갈아엎고 새로운 생명을 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전쟁과 분열, 가난과 박해로 황폐해진 이 시대의 폐허 위에서, 한국 교회는 무엇을 심고 있는가. 우리는 세상의 풍랑에 휩쓸려 표류하는 난파선이 아니라, 말씀의 닻을 내리고 희망의 돛을 올리며 생명의 방주가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이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온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은 오랫동안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졌던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이사야 6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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