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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에 심긴 한 알의 도토리, 시대의 소망을 품다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08 08:30

본문

스페인 의회는 해산되고, 유럽 대륙은 정체성의 폭풍우에 휩싸였으며, 5억이 넘는 성도들은 말씀의 기근 속에서 신음한다. 21세기의 연대기는 혼돈과 불안이라는 익숙한 서사로 채워지고 있다. 마치 방향타를 잃은 배처럼 시대는 위태롭게 표류하고, 교회는 이 격랑의 한복판에서 자신의 좌표를 되묻고 있다. 이러한 때에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나눠준 작은 ‘도토리’ 이야기는 시대의 심연을 관통하는 영적 통찰을 제공한다.

제프 파운틴은 도토리 한 알 속에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날 모든 잠재력이 담겨 있듯, 복음 안에 유럽을 넘어 온 세계를 새롭게 할 생명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음을 역설했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황폐한 땅 위에 의의 나무를 심어 폐허를 재건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을 상기시킨다. 역사는 이 약속이 공허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한다. 18세기 영국, 거대한 제국은 ‘노예무역’이라는 악의 참나무가 내린 깊은 그늘 아래 신음하고 있었다. 인간을 상품으로 전락시킨 이 거악 앞에서 수많은 지성과 양심이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바로 그때, 윌리엄 윌버포스와 그의 동지들인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라는 작은 도토리가 심겼다.

그들은 복음의 능력에 사로잡힌 이들이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는 정치적 술수나 경제적 논리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경적 확신과, 무릎 꿇는 기도의 능력이었다.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무수한 비난과 조롱,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도 그들은 복음이라는 닻을 내리고 흔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1807년, 노예무역 폐지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던 날 밤, 윌버포스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셨다.” 한 알의 도토리가 마침내 거대한 악의 참나무를 쓰러뜨리고, 역사 위에 새로운 의의 나무를 심은 순간이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도 다르지 않다. 짐바브웨 목회자 굿윌 샤나의 절규처럼, 우리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팬데믹, 전쟁의 폭풍 속에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에 요청되는 것은 세상의 방법론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유일한 닻을 더욱 깊이 내리는 것이다. 여성 리더십 논의가 단순한 ‘평등’을 넘어 거룩한 ‘동역’의 차원으로 승화되어야 하듯, 교회의 모든 지체는 각자의 은사와 부르심 안에서 파트너십을 이루어 이 시대의 무너진 곳을 보수해야 할 책임이 있다. 개혁신앙 이니셔티브가 10년간 신학적 순수성을 외쳐온 이유는, 이 모든 사역의 기초가 되는 진리가 흔들린다면 우리가 쌓아 올리는 모든 것이 사상누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말씀의 기근을 해소하는 일이다. 5억이 넘는 영혼이 성경에 접근조차 못 하는 현실은 이 시대 교회의 가장 큰 부끄러움이다. 생명의 씨앗인 말씀 없이는 어떤 의의 나무도 자라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이제 시선을 안에서 밖으로 돌려, 영적 폐허와 기근의 땅을 향해야 한다. 우리의 손에 들린 복음이 바로 그 땅을 다시 일으킬 유일한 도토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오늘 우리를 향한 명령이자 소망이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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