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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평화와 교회의 평화: 무너진 바벨탑 앞에서 길을 묻다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04 08:30

본문

인간의 역사는 평화를 향한 갈망과 그 성취의 실패가 교차하는 거대한 서사시와 같다. 최근 군사 동맹체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베스트팔렌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소식은 이 서사의 한 단면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30년의 참혹한 종교 전쟁을 종식시킨 베스트팔렌 조약의 정신을 기리는 상이, 본질적으로 전쟁을 상정하는 군사 기구에 수여되는 현실은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의 본질과 그 한계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세상의 평화는 종종 힘의 균형, 즉 더 큰 전쟁의 위협을 통해 유지되는 위태로운 휴전 상태에 불과하다. 이는 마치 서기 410년, ‘영원한 도시’ 로마가 고트족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로마인들이 겪었던 충격과 혼란을 떠올리게 한다. 당대의 이교도들은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통 신들의 노여움을 사 도시가 멸망했다고 비난했다. 이 거대한 문명사적 파국 앞에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역작 『신국론』(De Civitate Dei)을 통해 두 도성의 비전을 제시했다. 땅의 영광을 추구하며 스스로를 사랑하는 ‘지상의 도성’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창조주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도성’이 그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상의 도성이 추구하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며, 결국 자기 파멸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논증했다. NATO의 평화상 수상이라는 아이러니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지상의 도성이 자신의 힘으로 위태로운 평화를 쌓아 올리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유럽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유럽을 위한 희망’을 외치며 알바니아에 모이고, 독일복음주의연합이 ‘사회에 참여하되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교회의 정체성을 천명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도성을 살아가는 순례자들의 마땅한 행보를 보여준다. 교회는 세상의 정치적 힘을 빌려 평화를 구축하는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권력 구조와는 구별된 거룩함과 독립성을 견지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평화의 원리를 선포하고 살아내는 공동체여야 한다. 또한, ‘리포만다 이니셔티브’가 지난 10년간 종교개혁의 핵심 진리를 수호해 온 발자취는 교회가 선포해야 할 평화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다. 그 평화는 인간적인 타협이나 정치적 협상의 산물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이신칭의’의 복음 그 자체이다.

혼란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복음의 기회가 된다. 인간이 쌓아 올린 바벨탑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비로소 영원한 반석을 찾기 시작한다. 최근 유명인들의 신앙고백이 이어지고 대중 매체에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현상은, 진정한 공동체와 역사, 그리고 절대 진리를 향한 시대적 갈망을 반영한다. 지금이야말로 한국 교회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화를 담대히 증언해야 할 때다. 그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보장되는 평화가 아니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요, 하나님과의 영원한 화평이다.

교회는 세상의 평화상에 박수를 보내는 관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세상의 불완전한 평화를 넘어, 그리스도께서 친히 약속하신 참된 평화의 대사로 서야 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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