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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속에서 타오르는 불씨, 남은 자의 신앙을 보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15 08:30

본문

서구 기독교의 몰락, 특히 한때 세계 선교의 전초기지였던 영국의 세속화는 한국 교회에 깊은 위기감과 무력감을 안겨주는 단골 소재였다. 거대한 대성당이 술집으로, 박물관으로 변모하는 풍경은 마치 다가올 우리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한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영국 복음주의 연합(EAUK)이 발표한 보고서는 이 차가운 잿더미 속에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는 불씨가 존재함을 명백히 증언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내 실천하는 기독교인의 3분의 2가 복음주의 신학을 지지하며, 그 수가 무려 5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전체 인구의 8%에 해당하는 결코 작지 않은 수치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던져준다. 교회의 쇠퇴는 명목상의 교인, 즉 문화적 기독교의 소멸일 뿐,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자로 고백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는 복음주의적 신앙은 신앙의 동토와 같은 영국 땅에서 오히려 그 생명력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하나님의 섭리를 떠올리게 한다. 중세 시대, 로마 가톨릭의 타락과 압제가 극에 달했을 때, 알프스 산맥의 험준한 골짜기에는 ‘왈도파’(Waldensians)라 불리는 신실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교황의 권위가 아닌 오직 성경의 권위만을 인정하며, 라틴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필사하고 가르쳤다. 수세기에 걸친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그들은 ‘어둠 속에서 빛이 빛난다(Lux lucet in tenebris)’는 신조 아래 복음의 순수성을 지켜냈다. 세상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소수였지만, 그들이 지켜낸 신앙의 불씨는 훗날 종교개혁의 거대한 불길로 타오르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영국 복음주의자들의 견고한 존재는 왈도파의 역사를 넘어, 성경이 증언하는 ‘남은 자(Remnant)’ 사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합 시대에 모든 선지자가 죽고 자신만 남았다고 탄식하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로마서 11:4-5). 교회의 참된 생명력은 건물의 웅장함이나 교인의 수, 사회적 영향력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직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은혜로 택하심을 받은 ‘남은 자’들을 통해 보존되고 이어진다.

이제 한국 교회는 영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시선을 교정해야 한다. 외형적 성장의 시대가 저물어감을 탄식하며 과거의 영광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남은 자’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신앙을 굳건히 세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 그 자체에 있다. 시대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순전한 복음을 고백하고 살아내는 신실한 성도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희망이다. 영국에서 들려온 소식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어떻게 보존하고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한국 교회는 이제 양적 성장의 신기루에서 벗어나, 복음의 진수로 무장한 질적 견고함을 추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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