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파도 앞에서, 다시 말씀의 닻을 내리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07 08:30
본문
시대의 조류가 거세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세속적 가치관에 기반한 법안들을 막아서려는 교계의 ‘거룩한 방파제’ 운동은 시대의 파고가 얼마나 높은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기술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기계의 계산을 분별해야 하는 실존적 질문을 던지고, 교리적 순수성보다 가시적 일치를 앞세운 연합 운동은 신앙의 본질을 위협한다. 대마초의 해악을 예술로 고발하는 세상의 몸부림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영적 통찰은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현대 사회와 그 안의 성도들이 마주한 위기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 혼돈의 파도 앞에서 교회와 성도는 무엇을 붙잡고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하는가. 정치적 연대와 사회적 운동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능력이 될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에 대한 윤리적 성찰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영적 분별의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페인 성서공회가 190년간 묵묵히 걸어온 성경 번역과 보급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있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교황의 사절단이 모인 보름스 의회에 한 사제가 섰다.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서슬 퍼런 압박 앞에서,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답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철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옳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한 인간이 제국의 권력과 교회의 전통 앞에 내세운 유일한 방패이자 기준은 오직 성경이었다. 이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고, 암흑의 시대를 끝내는 서막을 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쌓아야 할 ‘거룩한 방파제’는 정치적 세력화나 인간적 연대에 앞서, 바로 이 ‘말씀의 방파제’여야 한다. AI가 제시하는 화려한 언변 속에서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하는 능력, 거짓된 일치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리 위에 굳게 서는 용기, 세상의 죄악을 꾸짖고 참된 회복의 길을 제시하는 권위는 모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성경은 시대를 분별하는 빛이며, 영혼을 수술하는 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세상의 풍랑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수많은 사상과 기술과 운동이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이때 우리를 안전하게 지킬 유일한 닻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생명이 있고, 성도들의 손에 들린 성경에 능력이 있을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유한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는 길 또한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모든 인간적인 전략과 기대를 내려놓고, 다시 한번 영원불변한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할 때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으로 수렴된다. 이 혼돈의 파도 앞에서 교회와 성도는 무엇을 붙잡고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하는가. 정치적 연대와 사회적 운동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본질적 사명과 능력이 될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에 대한 윤리적 성찰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영적 분별의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스페인 성서공회가 190년간 묵묵히 걸어온 성경 번역과 보급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모든 문제의 해답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있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교황의 사절단이 모인 보름스 의회에 한 사제가 섰다.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서슬 퍼런 압박 앞에서,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답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철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옳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 섰나이다. 나는 달리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한 인간이 제국의 권력과 교회의 전통 앞에 내세운 유일한 방패이자 기준은 오직 성경이었다. 이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종교개혁의 불을 지폈고, 암흑의 시대를 끝내는 서막을 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쌓아야 할 ‘거룩한 방파제’는 정치적 세력화나 인간적 연대에 앞서, 바로 이 ‘말씀의 방파제’여야 한다. AI가 제시하는 화려한 언변 속에서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하는 능력, 거짓된 일치의 유혹을 뿌리치고 진리 위에 굳게 서는 용기, 세상의 죄악을 꾸짖고 참된 회복의 길을 제시하는 권위는 모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다. 성경은 시대를 분별하는 빛이며, 영혼을 수술하는 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세상의 풍랑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이다. 수많은 사상과 기술과 운동이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이때 우리를 안전하게 지킬 유일한 닻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 생명이 있고, 성도들의 손에 들린 성경에 능력이 있을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유한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는 길 또한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제 모든 인간적인 전략과 기대를 내려놓고, 다시 한번 영원불변한 말씀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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