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시대, 부활의 소망을 증거하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01 08:30
본문
유럽 대륙의 복음주의자들이 알바니아에 모여 '불확실한 시대의 희망'을 논한다. 이 주제는 비단 유럽만의 화두가 아니다. 전 지구를 뒤덮은 팬데믹의 상흔, 그치지 않는 전쟁의 포성, 그리고 경제적 불확실성의 먹구름은 오늘을 사는 모든 이의 영혼을 잠식하며 희망의 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파라과이 상원이 '복음주의 교회 기념일'을 제정했다는 소식은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가시적 형태로 드러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교회가 국가로부터 그 역사적,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외적 성취가 교회의 본질적 소망이 될 수 없음을 경계해야 한다. 국가의 인정이나 제도의 확립은 신기루와 같아서, 시대의 바람이 바뀌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은 외부의 조건이나 평가가 아닌,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발원하는 법이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키고 생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를 증언했다. 그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죽음의 문턱에 선 이들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발견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목도했다. 이는 인간의 정신이 물질적 환경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예화다.
그러나 기독교의 소망은 인간 내면의 의미 찾기를 넘어, 역사적 시공간을 뚫고 들어온 하나님의 구체적 행위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1980년대 NBA 코트를 호령하던 '킹' 버나드 킹이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딛고 기적적으로 재기한 사건은, 이 부활의 능력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그림자처럼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적 예표다. 모든 의사가 불가능을 선언한 절망의 자리에서 그는 다시 일어섰고, 이는 십자가의 죽음을 깨뜨리고 사흘 만에 빈 무덤으로 당신의 승리를 증명하신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유럽복음주의연맹이 '해답은 이미 참석자들 안에 있다'고 천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답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인간적 지혜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부활의 영, 곧 그리스도의 생명 자체다. 교회는 이 부활 생명을 소유한 이들의 공동체이며, 세상의 그 어떤 절망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증인으로 부름받았다.
이제 한국 교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거대한 예배당의 위용인가, 늘어나는 교인의 수인가, 아니면 세상의 칭찬과 인정인가. 이제 우리는 모든 헛된 자랑을 내려놓고, 다시 십자가와 빈 무덤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생명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이 불확실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흔들리지 않는 산 소망의 증인으로 굳건히 서야 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3)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파라과이 상원이 '복음주의 교회 기념일'을 제정했다는 소식은 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이 가시적 형태로 드러난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교회가 국가로부터 그 역사적, 문화적 기여를 인정받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외적 성취가 교회의 본질적 소망이 될 수 없음을 경계해야 한다. 국가의 인정이나 제도의 확립은 신기루와 같아서, 시대의 바람이 바뀌면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은 외부의 조건이나 평가가 아닌,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발원하는 법이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아우슈비츠라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엄을 지키고 생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를 증언했다. 그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죽음의 문턱에 선 이들이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발견했을 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목도했다. 이는 인간의 정신이 물질적 환경을 초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엄한 예화다.
그러나 기독교의 소망은 인간 내면의 의미 찾기를 넘어, 역사적 시공간을 뚫고 들어온 하나님의 구체적 행위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1980년대 NBA 코트를 호령하던 '킹' 버나드 킹이 선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릎 부상을 딛고 기적적으로 재기한 사건은, 이 부활의 능력이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그림자처럼 임하는지를 보여주는 현대적 예표다. 모든 의사가 불가능을 선언한 절망의 자리에서 그는 다시 일어섰고, 이는 십자가의 죽음을 깨뜨리고 사흘 만에 빈 무덤으로 당신의 승리를 증명하신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유럽복음주의연맹이 '해답은 이미 참석자들 안에 있다'고 천명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해답은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인간적 지혜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부활의 영, 곧 그리스도의 생명 자체다. 교회는 이 부활 생명을 소유한 이들의 공동체이며, 세상의 그 어떤 절망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의 증인으로 부름받았다.
이제 한국 교회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거대한 예배당의 위용인가, 늘어나는 교인의 수인가, 아니면 세상의 칭찬과 인정인가. 이제 우리는 모든 헛된 자랑을 내려놓고, 다시 십자가와 빈 무덤 앞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 생명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리하여 이 불확실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흔들리지 않는 산 소망의 증인으로 굳건히 서야 할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베드로전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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