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문관의 유혹을 넘어, 교회의 길을 묻다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8-24 08:30
본문
22대 국회 개원을 둘러싼 소음이 한국 교회의 심장부를 관통하고 있다. 또다시 발의를 앞둔 차별금지법을 향해 교계는 결연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며, 거룩한 방파제를 자처하고 나섰다. 세속의 물결로부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열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우리는 이 투쟁의 이면에서 스며드는 위험한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식에 대한 교회의 오만, 즉 '통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지배의 욕망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유혹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대심문관은 광야에서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모두 거부하신 그리스도를 향해, 인류에게 감당 못 할 '자유' 대신 '빵'과 '안정'을 주었어야 했다고 질책한다. 그는 기적과 신비, 권위를 통해 인류를 강제적으로 구원하려 했으며, 이는 사랑에 기초한 자유로운 순종을 원하셨던 그리스도의 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오늘날 교회가 정치적 힘을 동원하여 법과 제도를 통해 신앙의 가치를 강제하려 할 때, 우리는 대심문관의 그늘을 발견하게 된다. 사회의 '일곱 산'을 정복하여 기독교적 통치를 실현하려는 구호 속에는, 세상을 섬김의 대상이 아닌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심문관의 차가운 시선이 어른거린다.
그러나 역사는 교회가 세상에 빛을 발했던 순간이 지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거룩한 문화와 영적 각성을 통해서였음을 증언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우크라이나가 기념하는 오스트로흐 성경 출간의 역사가 바로 그 증거다. 바실-콘스탄틴 오스트로즈키 공작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거센 파도 속에서 군사적 정복이 아닌, 동유럽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을 세우고 자국어로 된 성경을 인쇄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칼이 아닌 말씀으로 민족의 영혼을 일깨웠고, 정치적 권력이 아닌 교육과 신앙의 힘으로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세상의 법을 바꾸기 위해 거리에서 투쟁하기에 앞서, 다음 세대의 영혼을 말씀으로 세우는 아카데미를 건설하는 일, 그것이 우리의 우선적 과제여야 한다.
이 모든 영적 건축의 기초는 개인의 깊은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다. 암 투병이라는 인생의 가장 혹독한 골짜기를 지나온 골프선수 폴 애징거의 간증은 우리에게 그 기초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 없는 삶을 소망했다. 이는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넘어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는 절대적 믿음의 표현이다.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정치적 전략을 논하기 전에, 우리 각자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 없이 단단히 서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러한 내적 견고함이 결여된 외적 투쟁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린도후서 10:3-5). 한국 교회는 대심문관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세상을 통치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말씀의 반석 위에 다음 세대를 세우는 우직함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적 구호가 아닌,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진실한 삶의 간증으로 세상에 답해야 할 때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직면한 유혹의 본질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대심문관은 광야에서 사탄의 세 가지 시험을 모두 거부하신 그리스도를 향해, 인류에게 감당 못 할 '자유' 대신 '빵'과 '안정'을 주었어야 했다고 질책한다. 그는 기적과 신비, 권위를 통해 인류를 강제적으로 구원하려 했으며, 이는 사랑에 기초한 자유로운 순종을 원하셨던 그리스도의 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오늘날 교회가 정치적 힘을 동원하여 법과 제도를 통해 신앙의 가치를 강제하려 할 때, 우리는 대심문관의 그늘을 발견하게 된다. 사회의 '일곱 산'을 정복하여 기독교적 통치를 실현하려는 구호 속에는, 세상을 섬김의 대상이 아닌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심문관의 차가운 시선이 어른거린다.
그러나 역사는 교회가 세상에 빛을 발했던 순간이 지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거룩한 문화와 영적 각성을 통해서였음을 증언한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우크라이나가 기념하는 오스트로흐 성경 출간의 역사가 바로 그 증거다. 바실-콘스탄틴 오스트로즈키 공작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거센 파도 속에서 군사적 정복이 아닌, 동유럽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을 세우고 자국어로 된 성경을 인쇄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칼이 아닌 말씀으로 민족의 영혼을 일깨웠고, 정치적 권력이 아닌 교육과 신앙의 힘으로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세상의 법을 바꾸기 위해 거리에서 투쟁하기에 앞서, 다음 세대의 영혼을 말씀으로 세우는 아카데미를 건설하는 일, 그것이 우리의 우선적 과제여야 한다.
이 모든 영적 건축의 기초는 개인의 깊은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다. 암 투병이라는 인생의 가장 혹독한 골짜기를 지나온 골프선수 폴 애징거의 간증은 우리에게 그 기초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 없는 삶을 소망했다. 이는 단순히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넘어서,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신뢰하는 절대적 믿음의 표현이다. 세상의 불의에 분노하고 정치적 전략을 논하기 전에, 우리 각자의 심령이 하나님 앞에서 원망과 불평 없이 단단히 서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러한 내적 견고함이 결여된 외적 투쟁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린도후서 10:3-5). 한국 교회는 대심문관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세상을 통치하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말씀의 반석 위에 다음 세대를 세우는 우직함을 회복해야 한다. 정치적 구호가 아닌,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진실한 삶의 간증으로 세상에 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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