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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파도 앞에서, 말씀의 닻을 내리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8-22 08:30

본문

유럽 대륙에서 상반된 두 개의 바람이 동시에 불어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생의 마지막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조력 사망법이 헌법위원회의 최종 승인을 얻어,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법의 이름으로 공인되었다. 한편 폴란드의 작은 마을에는 유럽 최대 규모의 성모상이 세워져 순례자들의 발길을 모으고, UN에서는 생명과 가정을 옹호하는 국가들의 연대가 조직되고 있다. 문명의 황혼을 재촉하는 거대한 파도와, 그에 맞서려는 미약하지만 단호한 저항이 공존하는 시대의 풍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세속주의와 생명 경시 풍조가 서구 사회를 잠식하는 근본 원인은 교회의 영적 동력이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저강도 신앙’이라는 사회학적 진단은 바로 이 점을 예리하게 꿰뚫는다. 신앙이 삶의 중심을 뒤흔드는 역동적인 실재가 아니라, 개인의 안락을 위한 편리한 부가 서비스로 전락할 때,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없다. 이는 오늘날 수많은 성도들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생명의 말씀이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의 통로인 성경 읽기가, 하루의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해치워야 할’ 의무 사항이 되어버린 현실은 교회의 내적 위기를 가리키는 적신호다.

역사는 우리에게 엄중한 교훈을 남긴다. 16세기 초,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이라는 한 영국인 학자는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여 평신도들의 손에 쥐여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평생을 바쳤다. 당시 라틴어 성경을 독점하며 권위를 유지하던 기성 교회와 왕권의 서슬 퍼런 위협 속에서 그는 유럽 대륙을 떠도는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틴데일은 “쟁기를 끄는 소년이 교황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알게 되기를 원한다”고 외쳤다. 그에게 성경은 단순한 종교 경전이 아니라, 한 영혼을 살리고 시대를 변혁하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능력이었다. 결국 그는 이단으로 정죄되어 화형대 위에서 “주여, 영국 왕의 눈을 열어주소서”라는 마지막 기도를 남기고 순교했지만, 그가 목숨과 맞바꾼 성경은 훗날 킹 제임스 성경의 기초가 되어 영어권 세계의 영적, 문화적 토대를 놓았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거대한 성상을 세우거나 국제적 연대를 도모하는 외형적 대응에 앞서, 우리 각자의 심령과 교회의 중심에 말씀의 굳건한 닻을 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웨일스의 한 작은 지역에서 그들의 방언으로 복음서를 번역해낸 소식은, 비록 거대 담론에 가려 주목받지 못할지라도, 말씀이 살아 역사하도록 하려는 거룩한 몸부림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신앙의 본질은 의무감으로 말씀을 ‘해치우는’ 데 있지 않다. 날마다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이 우리의 생각과 삶을 송두리째 주장하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는 치열한 관계 맺기에 있다.

세상의 풍조가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살아있는 말씀 위에 굳게 선 교회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교회가 다시금 말씀의 능력으로 채워질 때, 비로소 우리는 죽어가는 세상 속에서 생명의 방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그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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