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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세상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2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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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를 집어삼킨 거대한 산불의 검은 연기가 온 유럽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 꺼지지 않는 불길은 비단 먼 나라의 숲만을 태우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외로움과 소외, 이념 갈등과 영적 공허라는 또 다른 불길에 휩싸여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오늘의 뉴스는 한국 교회에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교회는 이 모든 고통과 절규로부터 안전한 성채(城砦) 안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불길 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가는 소방수와 같이 세상의 아픔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최근 650km의 길을 걸어 순교의 신앙을 되새긴 '거룩한방파제 국토순례'의 발걸음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 폭염과 폭우, 무관심의 냉대 속에서도 그들은 안락한 예배당의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순례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졌던 순교자들의 신앙이 오늘날 고통받는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여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증언한 행위였다. 교회는 더 이상 성벽 안에 갇힌 메아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 미디어가 공적 영향력을 회복해야 한다는 외침처럼, 교회는 세상의 광장으로 나아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와 그의 동지들인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의 삶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떻게 빛이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예화다. 그들은 경건한 신앙을 개인의 영역에 가두지 않았다. 당시 대영제국의 번영을 지탱하던 거대한 악, 노예무역이라는 참혹한 불길을 마주했을 때, 그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반대와 비난 속에서도 의회에서, 거리에서, 인쇄물 위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외쳤다. 그들의 투쟁은 결국 노예무역 폐지라는 거대한 열매를 맺었다. 이는 신앙이 세상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현실과 만날 때, 비로소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됨을 증명한 사건이다.

물론 세상으로 나아가기 전,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교회 내부의 작은 변화조차 어렵게 만드는 경직된 구조와 무관심은 없는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해 작은 손 장난감을 비치하는 것과 같은 사소하지만 본질적인 변화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가 먼저 서로의 연약함을 품는 포용적인 공동체가 되지 못한다면, 세상의 소외된 이들을 향한 우리의 외침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것이다. 내부의 변화와 쇄신은 세상을 향한 선교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세상은 불타고 있다. 교회는 더 이상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가장 낮은 곳, 가장 아픈 곳으로 스스로를 던져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5-8)

이제 한국 교회는 견고한 성벽을 허물고 세상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할 때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소방수의 심정으로, 그리고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저 꺼져가는 불길 속에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향해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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