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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 교회의 길을 묻다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26 08:30

본문

스페인 마드리드를 집어삼킨 거대한 산불의 검은 연기가 유럽의 하늘을 뒤덮고, 문명의 심장부에서는 전염병처럼 번지는 외로움이 수많은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이 연명 의료와 안락사라는 첨예한 논쟁의 저울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복음을 전하려는 순수한 열정은 세속화된 사회의 차가운 벽에 부딪혀 갈 곳을 잃고 있다. 피조세계의 신음과 인간 사회의 파열음이 뒤섞여 혼돈의 교향곡을 연주하는 이 시대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교회의 존재 이유와 나아갈 길을 근원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고통과 적대감 앞에서 교회는 종종 안락한 성채 안에 스스로를 가두려는 유혹을 받는다.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귀를 막고 우리만의 언어로 소통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복음의 역사는 단 한 번도 교회가 세상과 분리된 섬으로 존재할 때 생명력을 발휘했다고 증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는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역사의 현장 속으로 담대히 걸어 들어감으로써 그 빛을 발해왔다.

3세기 중반, 로마 제국을 휩쓴 '키프리아누스 역병'의 시대가 이를 웅변한다. 역사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로마 시민들은 역병에 걸린 가족과 이웃을 길거리에 내버리고 필사적으로 도시를 탈출했다. 죽음의 공포가 모든 인간적 유대를 끊어버린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바로 그때, 세상의 방식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 있었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 형제들 대다수는 넘치는 사랑과 충성심을 보여주며 자신을 아끼지 않고 서로를 굳게 붙들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병자들을 돌보았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섬겼다." 그들은 이교도들까지도 돌보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병자들을 간호하다가 그들 자신도 병에 감염되어 순교적 죽음을 맞았다. 이 숭고한 희생은 단순한 자선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온몸으로 살아낸 가장 강력한 복음 선포였다. 잿더미와 시신으로 가득했던 죽음의 도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자기희생적 사랑은 꺼지지 않는 생명의 불꽃으로 타올랐고, 훗날 로마 복음화의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시대적 과제들은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3세기 로마의 역병과 다르지 않다. 모잠비크의 '세켈레카'에서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은, 모든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중하는 사랑의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다. 생명윤리의 첨예한 논쟁 앞에서 생명의 주권이 창조주께 있음을 선포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성을 향한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이다. 프랑스에서 복음주의 축제가 거부당하고 곳곳에서 신앙인들이 핍박받는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역설적인 부르심이다.

교회는 더 이상 스스로를 위한 메아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 미디어가 공적 담론의 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바로 교회가 세상의 광장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회당과 시장에서 가르치셨듯, 바울이 아레오바고 언덕에 섰듯, 우리 또한 이 시대의 광장에서 담대히 외쳐야 한다. 그것은 때로 고난을 자초하는 길이며, 세상의 조롱과 맞서는 가시밭길일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그 십자가의 길을 피하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없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은 교회의 웅장한 건물이 아니라, 고통받는 세상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 그 자체이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로마서 8: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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