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에서 피우는 생명의 불꽃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25 08:30
본문
스페인 마드리드를 집어삼킨 거대한 산불의 검은 연기가 유럽 대륙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 수만 명의 이재민과 잿더미로 변한 광활한 산림은 피조세계의 깊은 탄식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마주한 소식들은 비단 자연의 재해뿐만이 아니다. 생명의 존엄성이 흔들리는 윤리의 논쟁, 신앙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세속주의의 물결, 복음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는 지역 사회의 완고한 저항 등, 시대의 정신 또한 곳곳에서 거센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다.
이러한 위기와 혼돈의 파노라마 앞에서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며 안전한 성채 안으로 숨어들 것인가, 아니면 잿더미와 같은 현실의 한복판으로 담대히 걸어 들어가 생명의 불꽃을 피워낼 것인가. 오늘의 소식들은 후자의 길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나치 정권이 독일 교회의 양심을 무참히 짓밟던 암흑의 시절,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안전한 망명지였던 미국을 떠나 의도적으로 고난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안락한 신앙의 온실 속에서 값싼 은혜를 누리는 것을 거부하고, 역사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값비싼 은혜’의 길을 걸었다. 그의 선택은 교회가 세상의 고통과 죄악으로부터 도피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그 심장부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적 존재임을 웅변한다. 오늘날 스위스에서 공직자의 종교 상징 착용 금지에 맞서고, 프랑스에서 복음주의 축제의 장소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바로 이 본회퍼의 영적 후예들이 벌이는 시대적 분투다.
이러한 영적 투쟁이 구체적으로 어떤 열매를 맺는지는 멀리 모잠비크의 ‘세켈레카’ 공동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아무런 편견 없이 어우러져 배우고 성장하는 그곳은, 세상의 기준으로 버려지고 소외된 이들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작은 천국이다. 세켈레카는 교회가 세상의 논리를 역행하여 어떻게 생명을 살리고 통합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다. 이는 과거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로운 일을 기대하며 광야에 길을 내는 믿음의 실천이다.
핍박과 재난, 거부와 오해의 소식들이 우리를 낙담케 할지라도, 우리는 절망의 포로가 아닌 ‘희망의 포로’로 부름받았다. 스페인의 불탄 산림 위로 언젠가 새싹이 돋아나듯, 세속화된 유럽의 영적 폐허 속에서도 복음의 생명력은 결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 시대적 현실을 직시하며, 안일함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무엇보다 낮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순종의 자리에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이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8-19)
이러한 위기와 혼돈의 파노라마 앞에서 교회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며 안전한 성채 안으로 숨어들 것인가, 아니면 잿더미와 같은 현실의 한복판으로 담대히 걸어 들어가 생명의 불꽃을 피워낼 것인가. 오늘의 소식들은 후자의 길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나치 정권이 독일 교회의 양심을 무참히 짓밟던 암흑의 시절,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안전한 망명지였던 미국을 떠나 의도적으로 고난의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그는 안락한 신앙의 온실 속에서 값싼 은혜를 누리는 것을 거부하고, 역사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값비싼 은혜’의 길을 걸었다. 그의 선택은 교회가 세상의 고통과 죄악으로부터 도피하는 방관자가 아니라, 그 심장부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책임적 존재임을 웅변한다. 오늘날 스위스에서 공직자의 종교 상징 착용 금지에 맞서고, 프랑스에서 복음주의 축제의 장소를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바로 이 본회퍼의 영적 후예들이 벌이는 시대적 분투다.
이러한 영적 투쟁이 구체적으로 어떤 열매를 맺는지는 멀리 모잠비크의 ‘세켈레카’ 공동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아무런 편견 없이 어우러져 배우고 성장하는 그곳은, 세상의 기준으로 버려지고 소외된 이들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는 작은 천국이다. 세켈레카는 교회가 세상의 논리를 역행하여 어떻게 생명을 살리고 통합을 이루는지를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다. 이는 과거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로운 일을 기대하며 광야에 길을 내는 믿음의 실천이다.
핍박과 재난, 거부와 오해의 소식들이 우리를 낙담케 할지라도, 우리는 절망의 포로가 아닌 ‘희망의 포로’로 부름받았다. 스페인의 불탄 산림 위로 언젠가 새싹이 돋아나듯, 세속화된 유럽의 영적 폐허 속에서도 복음의 생명력은 결코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이 시대적 현실을 직시하며, 안일함에서 벗어나 공적 영역에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미디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무엇보다 낮은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순종의 자리에 새로운 일을 행하실 것이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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