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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헌신적이고 비판적인 친구'의 길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24 08:30

본문

오늘 우리에게 당도한 국내외 소식들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회는 세상의 광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서야 하는가. 생명의 존엄을 위협하는 첨예한 윤리적 논쟁부터 공직자의 종교적 상징 착용을 둘러싼 법적 투쟁, 복음주의 미디어의 공적 영향력 확대 요구에 이르기까지, 시대는 교회를 향해 침묵이 아닌 응답을, 고립이 아닌 관계를 요청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더 이상 안온한 성채 안에 머물 수 없으며,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필연적 소명을 재확인시킨다.

영국 복음주의 연합이 신임 총리에게 스스로를 '헌신적이고 비판적인 친구(committed and critical friend)'로 여겨달라 요청한 것은, 이 시대 교회가 지향해야 할 정체성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헌신적인 친구'란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모잠비크의 세켈레카 센터처럼 가장 낮은 곳으로 나아가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이는 사회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기도하며, 공동선에 기여하고자 하는 교회의 진실한 마음이다. 그러나 교회는 동시에 '비판적인 친구'가 되어야 한다. 진리가 왜곡되고 생명의 가치가 훼손될 때, 불의가 정의의 옷을 입고 활보할 때, 교회는 예언자적 목소리로 시대의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해야 할 책무가 있다.

역사는 이러한 '친구'의 길을 걸었던 신앙의 선배들을 증언한다. 18세기 영국, 노예무역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거대한 악의 시스템이었다. 모두가 그 참상을 외면하거나 당연시할 때, 독실한 복음주의자였던 윌리엄 윌버포스는 의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조국 영국을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노예제라는 치명적인 죄악에 대해서는 가장 집요하고 날카로운 비판자였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외로운 투쟁은 동료 의원들의 조롱과 비난, 살해 위협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단지 비판에만 머물지 않고 끈질긴 설득과 입법 활동이라는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마침내 1833년, 대영제국 전역에서 노예제를 폐지하는 위대한 결실을 보았다. 윌버포스의 삶이야말로 세상을 향한 '헌신적이고 비판적인 친구'의 전형이다.

이러한 공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한국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내면의 동력을 점검해야 한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하며 하나님의 새로운 일하심을 기대하지 않는 영적 타성은, 세상을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무디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이다. 하나님께서는 어제와 동일하신 분이지만, 동시에 언제나 새 일을 행하시는 창조주이시다. 우리가 과거의 영광이라는 우물에 갇혀 있다면, 하나님께서 광야에 내시는 길과 사막에 여시는 강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사야 43:18-19)

이제 한국 교회는 세상이라는 광야를 향해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때로는 환영받지 못하고(프랑스 로마 축제),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해야 할지라도(생명윤리 세미나), 그것이 바로 교회가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이다. 사랑하기에 헌신하고, 사랑하기에 비판하는 '친구'로서 세상 곁에 설 때, 비로소 교회는 시대의 소망이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능력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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