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상의 빛으로 다시 서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22 08:30
본문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작은 마을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랑의 공동체가 세워지고, 중동 이란에서는 백여 년 역사의 교회가 강제 폐쇄의 위협 앞에 신음하며, 유럽의 심장부 영국에서는 새로운 총리를 향해 교회가 ‘헌신적이고 비판적인 친구’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각기 다른 대륙에서 전해진 소식들은 흩어진 파편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지고 있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 속에서 무엇이며, 어디에 서야 하는가.
그 답의 첫 실마리는 모잠비크의 ‘세켈레카’에서 찾을 수 있다. ‘일어나라’는 뜻의 이 공동체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통합 교육을 실현하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차별과 분리의 담을 허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구제나 복지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이 땅에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교회의 증언은 고결한 강단의 선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상처 입은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서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따뜻한 사랑의 실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의 구조 악을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용기와 신념 또한 교회의 본질적 책무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의 광기가 유럽을 집어삼키던 암흑의 시절, 교회의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을 ‘값싼 은혜’라 질타했다. 그는 안전한 망명의 기회를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는 ‘값비싼 은혜’의 길을 택했다. 오늘날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는 이란의 교회와, 세속 권력의 동반자이기를 거부하고 ‘비판적 친구’로 서겠다 다짐하는 영국 복음주의 연합의 모습에서 우리는 본회퍼가 걸어갔던 그 십자가의 길을 발견한다. 교회는 세상의 권력 앞에 아첨하는 시녀가 아니라, 진리의 등불을 든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과 신념의 증언은 반드시 세상과 소통할 통로를 필요로 한다. 복음주의 미디어 전문가 페드로 타르퀴스의 지적처럼, 아무리 위대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전달될 통로가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회당과 산, 길 위와 광장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셨듯,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모든 영역을 향해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닫힌 문안에서 우리끼리만 소통하는 것을 넘어, 문화, 예술, 정치, 경제 등 공론의 장으로 나아가 복음의 변혁적 능력을 증거해야 할 때다.
결국 이 모든 공적 증언의 뿌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깊은 감사에 있다. 오른손을 잃고도 왼손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사격선수 카롤리 타카치의 이야기는, 감사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감사의 태도를 통해 그 자체가 세상에 전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한국 교회는 이제 안락한 성채 안에 머물기를 그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의 증인으로 다시 서야 한다. 그 빛은 교회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바는 명확하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그 답의 첫 실마리는 모잠비크의 ‘세켈레카’에서 찾을 수 있다. ‘일어나라’는 뜻의 이 공동체는 장애 아동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통합 교육을 실현하며, 세상이 만들어 놓은 차별과 분리의 담을 허물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구제나 복지를 넘어, 하나님 나라의 원리가 이 땅에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교회의 증언은 고결한 강단의 선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상처 입은 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일어서는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따뜻한 사랑의 실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의 구조 악을 향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용기와 신념 또한 교회의 본질적 책무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의 광기가 유럽을 집어삼키던 암흑의 시절, 교회의 공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을 ‘값싼 은혜’라 질타했다. 그는 안전한 망명의 기회를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는 ‘값비싼 은혜’의 길을 택했다. 오늘날 신앙을 이유로 박해받는 이란의 교회와, 세속 권력의 동반자이기를 거부하고 ‘비판적 친구’로 서겠다 다짐하는 영국 복음주의 연합의 모습에서 우리는 본회퍼가 걸어갔던 그 십자가의 길을 발견한다. 교회는 세상의 권력 앞에 아첨하는 시녀가 아니라, 진리의 등불을 든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과 신념의 증언은 반드시 세상과 소통할 통로를 필요로 한다. 복음주의 미디어 전문가 페드로 타르퀴스의 지적처럼, 아무리 위대한 메시지라도 그것이 전달될 통로가 없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주님께서 회당과 산, 길 위와 광장을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셨듯,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모든 영역을 향해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닫힌 문안에서 우리끼리만 소통하는 것을 넘어, 문화, 예술, 정치, 경제 등 공론의 장으로 나아가 복음의 변혁적 능력을 증거해야 할 때다.
결국 이 모든 공적 증언의 뿌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깊은 감사에 있다. 오른손을 잃고도 왼손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사격선수 카롤리 타카치의 이야기는, 감사가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임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 속에서도 피어나는 감사의 태도를 통해 그 자체가 세상에 전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한국 교회는 이제 안락한 성채 안에 머물기를 그치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의 증인으로 다시 서야 한다. 그 빛은 교회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바는 명확하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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