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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심연에서 소망을 길어 올리는 길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20 08:30

본문

네덜란드에서 들려온 12세 미만 아동에 대한 안락사 시행 소식은 우리 시대의 영적 현주소를 드러내는 비극적 징표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의료 정책 변경이 아니라, 생명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피조물인 인간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하는 문명의 어두운 이정표와 같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고통받는 생명 자체를 제거하겠다는 논리는, 삶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사회가 다다를 수밖에 없는 필연적 귀결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앞에서 교회는 어떤 응답을 내놓아야 하는가. 유럽복음주의연합(EEA)이 천명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은 중요한 신학적 원리이지만, 선언만으로는 죽음의 문화를 이겨낼 수 없다. 우리에게는 절망의 가장 깊은 심연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소망을 길어 올리는 영적 동력이 필요하다.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그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통해 나치 강제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했다. 그는 모든 것이 파괴된 그곳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똑같은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삶을 포기하고 스러져갔지만, 어떤 사람은 끝까지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 차이는 바로 '삶의 의미'에 있었다. 프랭클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갈 수는 있지만,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즉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앗아갈 수 없다.”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삶과 죽음을 가른다는 통찰이다.

프랭클의 이 통찰은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관통한다. 신앙은 고통의 '부재'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시련을 통해 마침내 소망에 이르는 역설의 진리를 가르친다. 오른손을 잃고도 왼손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사격선수 카롤리 타카치의 이야기는, 절망적 현실을 재해석하는 감사의 태도가 어떤 기적을 낳는지를 웅변한다. 감사는 단순히 좋은 일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삶의 의미를 선택하는 영적 결단이다. 성경은 이 진리를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3-5)

한국 교회는 네덜란드의 소식을 더 이상 강 건너 불 보듯 해서는 안 된다. 생명 경시와 절망의 문화는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교회의 사명은 생명의 신성함을 외치는 것을 넘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고난 속에서 인내와 연단을 거쳐 소망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도록 돕는 것이다. 죽음의 문화가 내세우는 '고통 없는 안락한 죽음'이라는 거짓된 위로에 맞서, 교회는 '고통을 이기는 부활의 소망'이라는 영원한 진리를 삶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교회가 감당해야 할 유일하고도 가장 강력한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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