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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떠난 자리에 선 교회, 무엇을 할 것인가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1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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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전해진 소식들은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처럼, 시대의 영적 풍경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한편에서는 잉태된 생명의 존엄을 선포하는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고(마드리드), 다른 한편에서는 문명의 소멸을 재촉하는 저출산의 그늘이 짙게 드리운다(독일). 세속의 광장에서 예수를 향한 조롱과 의심이 난무하는(스위스 축구선수) 동시에, 그의 생애를 탐구하려는 지적 호기심이 발동한다(BBC). 이 혼돈의 파노라마는 오늘날 교회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 모든 현상은 '하나님 없는 세상'이 마주한 필연적 귀결이다. 생명의 주관자를 부인한 문명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는 '인구 절벽' 앞에 서고, 절대 진리를 거부한 사회는 신앙 고백을 '음모론'으로 치부하며 경계한다. AI와 디지털 소통이 약속한 유토피아는 오히려 대면의 온기를 앗아가고 '침묵하는 세대'를 낳으며 공동체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영적 뿌리를 상실한 문명이 겪는 실존적 고통의 신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 시대의 자화상과 같다. 대심문관은 16세기 스페인 세비야에 다시 오신 예수를 향해 “왜 우리를 방해하러 왔는가?”라고 힐난한다. 그는 인류가 그리스도가 준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감당할 수 없기에, 교회가 기적과 신비, 권위를 통해 인류에게 '빵'과 '안정'을 주며 그분의 사역을 '수정'했다고 강변한다. 오늘날 세상은 대심문관과 같이, 살아계신 왕 예수를 경배하는 자유로운 신앙을 불편해하며, 대신 복음서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해체하여 안전하게 박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십자가의 예수는 원치 않고,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역사적 예수'만을 원한다.

그러나 세상만을 탓할 수는 없다. 북아일랜드에서 들려온 개신교 정치인의 추악한 범죄 소식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는커녕, 위선과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고통스럽게 확인시켜 준다. 무너진 신뢰의 제단 위에서 외치는 복음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따라서 교회의 첫 번째 과제는 세상을 향한 정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처절한 회개여야 한다.

회복의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태아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작은 움직임처럼, 교회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생명의 문화를 창조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침묵하는 세대'를 향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얼굴을 마주하며 진리 안에서 교제하는 공동체의 기쁨을 회복시켜야 한다. 득점 후 왕이신 하나님께 왕관을 바치는 선수의 용기처럼, 조롱과 오해 속에서도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하는 삶의 증거들을 세워나가야 한다. 결국 교회는 세상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가치관과 시스템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서 새로운 질서와 문화를 제시해야 한다.

사도 바울의 권면이 오늘따라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생명이 떠나가는 황량한 들판 위에서, 교회는 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다시금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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