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눈초리 속에서, 다시 빛을 발하는 복음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09 08:30
본문
유럽 대륙에 짙은 영적 겨울이 드리우고 있다. 독일의 출산율은 3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며 생명의 샘이 말라가는 현실을 드러냈고, 개인의 절대적 자율성을 숭배하는 문화는 역설적으로 깊은 외로움과 중독의 그늘을 낳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풍경 속에서, 신앙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기독교인들은 ‘음모론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위스의 한 축구 선수가 득점 후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신앙 행위마저, 세속 언론의 날 선 프레임 속에서 불온한 집단의 음모로 변질되는 것이 오늘 유럽의 현실이다.
그러나 절망의 땅에서도 소망은 싹트는 법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는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다. 18세기 말 영국, 윌리엄 윌버포스와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는 당대의 거대한 악, 노예무역에 맞서 싸웠다. 그들의 동력은 정치적 야망이나 경제적 계산이 아니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엄한 존재라는, 흔들리지 않는 복음적 신념이었다. 세상의 조롱과 비난, 막강한 기득권의 저항 속에서도 수십 년에 걸친 그들의 끈질긴 외침은 마침내 제국의 심장을 움직였고,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세상을 등진 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신앙의 본질을 증명했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도 바로 그 클래펌 공동체의 후예들처럼, 세속의 광야에 길을 내고 있다. 유럽 복음주의 연합(EEA)은 스스로를 ‘좋은 소식의 사람들’로 재정의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스페인복음주의연맹(AEE)은 150주년을 맞아 사회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수태된 태아’를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가 이룬 값진 결실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정책 변화가 아니라, 시대를 역행하는 거룩한 저항이며,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교회는 세상의 의심에 위축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선명한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할 때다. 세상이 추구하는 고립된 ‘독립’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상호의존’의 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교회가 먼저 생명과 사랑, 진정한 관계의 풍성함을 누릴 때, 세상은 그 빛을 보고 나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세상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담대히 선포해야 할 시간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그러나 절망의 땅에서도 소망은 싹트는 법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는 우리에게 길을 제시한다. 18세기 말 영국, 윌리엄 윌버포스와 ‘클래펌 공동체(Clapham Sect)’는 당대의 거대한 악, 노예무역에 맞서 싸웠다. 그들의 동력은 정치적 야망이나 경제적 계산이 아니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엄한 존재라는, 흔들리지 않는 복음적 신념이었다. 세상의 조롱과 비난, 막강한 기득권의 저항 속에서도 수십 년에 걸친 그들의 끈질긴 외침은 마침내 제국의 심장을 움직였고,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다. 그들은 세상을 등진 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신앙의 본질을 증명했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도 바로 그 클래펌 공동체의 후예들처럼, 세속의 광야에 길을 내고 있다. 유럽 복음주의 연합(EEA)은 스스로를 ‘좋은 소식의 사람들’로 재정의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스페인복음주의연맹(AEE)은 150주년을 맞아 사회를 향한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수태된 태아’를 가족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는 교회의 예언자적 목소리가 이룬 값진 결실이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정책 변화가 아니라, 시대를 역행하는 거룩한 저항이며,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교회는 세상의 의심에 위축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선명한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할 때다. 세상이 추구하는 고립된 ‘독립’이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를 섬기는 ‘상호의존’의 공동체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교회가 먼저 생명과 사랑, 진정한 관계의 풍성함을 누릴 때, 세상은 그 빛을 보고 나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세상의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담대히 선포해야 할 시간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사명은 바로 이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기사 공유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