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을 뚫는 믿음, 무너진 세상에 교회가 다시 세울 제단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28 08:30
본문
대지가 신음하고 민족이 분쟁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땅은 100년 만의 강진으로 갈라졌고, 수많은 생명이 무너진 건물더미 아래 스러졌다. 그와 동시에 유럽에서는 한 교회의 지도자가 전쟁을 ‘신성한 것’으로 미화하며 신앙을 권력의 제단에 제물로 바치는 비극이 연출되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는 프리메이슨과 영지주의 같은 이질적 사상이 복음의 순수성을 위협하고, 타문화권 개종자들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고립되는 아픔을 겪는다. 오늘의 소식들은 마치 종말의 때를 경고하는 나팔 소리처럼, 이 시대의 무너진 제단과 길 잃은 교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역사의 거울은 오늘날의 비극이 낯선 것이 아님을 증언한다. 20세기 초, 독일 교회가 히틀러의 광기에 동조하며 ‘독일적 기독교’라는 우상을 섬겼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신학의 중심에 놓고, 십자가의 유대인 예수를 금발의 아리안 예수로 둔갑시키려 했다. 복음은 민족주의의 시녀가 되었고, 교회는 악의 화신에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타락의 소굴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암흑의 시대에, 디트리히 본회퍼를 위시한 고백교회는 ‘바르멘 신학선언’을 통해 단호히 선포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바 그대로, 우리가 듣고 삶과 죽음 속에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과 사상이 아닌, 오직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목숨을 걸었다. 오늘날 국가주의와 결탁한 러시아 정교회, 세상의 신비주의와 손잡은 일부 교회의 모습에서 우리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시금 목도한다.
그러나 절망의 폐허 속에서도 생명의 씨앗은 싹튼다. 베네수엘라의 참상 현장으로 달려가 흙먼지 속에서 신음하는 이웃의 손을 잡는 기독교 구호단체들의 헌신은 이 시대의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화려한 월드컵 무대 한가운데서,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고 “모든 선한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내려온다”는 야고보서 말씀을 고백하는 축구선수 제레미 도쿠의 순전한 신앙은 세상의 그 어떤 웅변보다 힘 있는 간증이다. 이들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요, 무너진 세상 속에 다시 세워지는 살아있는 제단이다.
교회의 본질은 견고한 건물이나 조직, 세상과의 타협에 있지 않다. 교회의 사명은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려가기 위해 지붕을 뚫었던 네 친구의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장애인을 가로막는 문턱, 개종자를 소외시키는 문화적 편견, 복음의 진리를 흐리는 혼합주의의 지붕을 거두어내고, 모든 영혼이 아무런 방해 없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나아오게 하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본받아 허물어질 제단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삶을 드려 영원한 제단을 세우고 있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역사의 거울은 오늘날의 비극이 낯선 것이 아님을 증언한다. 20세기 초, 독일 교회가 히틀러의 광기에 동조하며 ‘독일적 기독교’라는 우상을 섬겼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신학의 중심에 놓고, 십자가의 유대인 예수를 금발의 아리안 예수로 둔갑시키려 했다. 복음은 민족주의의 시녀가 되었고, 교회는 악의 화신에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타락의 소굴이 되었다. 그러나 그 암흑의 시대에, 디트리히 본회퍼를 위시한 고백교회는 ‘바르멘 신학선언’을 통해 단호히 선포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이 우리에게 증언하는 바 그대로, 우리가 듣고 삶과 죽음 속에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그들은 세상의 권력과 사상이 아닌, 오직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목숨을 걸었다. 오늘날 국가주의와 결탁한 러시아 정교회, 세상의 신비주의와 손잡은 일부 교회의 모습에서 우리는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시금 목도한다.
그러나 절망의 폐허 속에서도 생명의 씨앗은 싹튼다. 베네수엘라의 참상 현장으로 달려가 흙먼지 속에서 신음하는 이웃의 손을 잡는 기독교 구호단체들의 헌신은 이 시대의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화려한 월드컵 무대 한가운데서, 갓 태어난 아들을 품에 안고 “모든 선한 선물과 모든 온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내려온다”는 야고보서 말씀을 고백하는 축구선수 제레미 도쿠의 순전한 신앙은 세상의 그 어떤 웅변보다 힘 있는 간증이다. 이들의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요, 무너진 세상 속에 다시 세워지는 살아있는 제단이다.
교회의 본질은 견고한 건물이나 조직, 세상과의 타협에 있지 않다. 교회의 사명은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려가기 위해 지붕을 뚫었던 네 친구의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장애인을 가로막는 문턱, 개종자를 소외시키는 문화적 편견, 복음의 진리를 흐리는 혼합주의의 지붕을 거두어내고, 모든 영혼이 아무런 방해 없이 그리스도의 발아래 나아오게 하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를 본받아 허물어질 제단을 쌓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삶을 드려 영원한 제단을 세우고 있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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