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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한복판에서 길을 묻는 교회를 향하여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25 08:30

본문

오늘의 지면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자화상을 파편처럼 비춘다. 한편에서는 76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을 기억하며 자유의 가치를 되새기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공지능이라는 미증유의 기술 앞에서 인간의 존엄을 논한다. 유럽의 복음주의자들은 스스로의 ‘사각지대’를 성찰하고, 알바니아의 시민들은 부패한 권력을 향해 투명성을 외친다. 이 모든 소식의 파편들을 하나로 꿰뚫는 질문은 이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교회는 과거를 기억하는 공동체이지만, 과거에만 머무는 박물관이 될 수는 없다. 6.25 전쟁의 참화를 잊는 것은 자유 대한민국을 세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배은이며, 공산주의라는 적의 실체를 외면하는 영적 무지다. 그러나 기억이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만 남을 때, 교회는 세상과 소통할 언어를 잃고 고립된 섬이 된다. 유럽 교회가 지역 교회의 울타리에 갇혀 대륙 전체의 변화에 ‘사각지대’를 갖게 된 현실은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가 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교회는 다음 세대를 향한 복음의 통로를 스스로 차단하게 될 것이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인공지능의 윤리적 규범을 논하는 유럽의회에서, 부패에 저항하는 알바니아의 거리에서, 성(性)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 전쟁이 벌어지는 야구장에서 세상은 신음하며 답을 구하고 있다. 이때 교회가 침묵하거나 세상의 언어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우리의 신앙은 주일 오전 예배당의 문을 나서는 순간 증발해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문화, 과학기술이라는 삶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증언해야 할 책임과 연결된다.

네덜란드의 신학자이자 수상이었던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우리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을 통틀어 만물의 주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이것은 내 것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 영역은 단 한 치도 없다”고 선언했다. 그는 신앙을 개인의 경건에 가두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이 정치, 학문, 예술 등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침을 역설하며 기독교 정당을 창당하고 대학을 설립했다. 카이퍼의 삶은 성(聖)과 속(俗)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세상의 문제에 뒷짐 지려는 안일한 신앙에 경종을 울린다.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을 성경적 가치로 조명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야말로 ‘모든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의 주권’을 고백하는 교회의 마땅한 사명이다.

물론 세상의 한복판에 서기 위해 교회는 먼저 진리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야 한다. 네덜란드의 젊은이들이 혼란 속에서 신앙의 안정과 의미를 찾고,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로마 가톨릭에 대한 신학적 분별력을 강조하는 것은 이 시대의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과 진리의 명확성을 회복해야 함을 보여준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소금의 짠맛을 잃지 않고 빛의 근원을 향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우리가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린도후서 10:4-5)

한국 교회는 이제 기억의 초석을 딛고 일어나 세상의 한복판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의 상흔을 되새기는 것을 넘어, 오늘의 과제에 응답하며, 내일의 도전을 준비해야 한다. 견고한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감당해야 할 때다. 그것이 이 혼돈의 시대에 교회가 길을 잃지 않고, 세상에 유일한 희망의 길을 제시하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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