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며, 세상의 빛으로 서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21 08:30
본문
오늘날 교회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 앞에 서 있다. 스페인에서는 세속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맞서 교회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법적 투쟁이 시작되었고, 프랑스에서는 신앙을 향한 노골적인 증오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이슬람 개종을 거부한 어린 소녀가 8년째 억류된 채 고통받고 있다. 세상의 적의와 핍박은 더욱 교묘하고 거세지며, 마치 폭풍우가 작은 배를 삼키려는 듯 교회를 위협한다.
그러나 가장 견고한 성채도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의 부패와 배신으로 무너지는 법이다. 작금의 교회가 마주한 더 심각한 위기는 밖에서 오는 파도가 아니라, 배 밑바닥에서부터 새어 들어오는 차가운 물, 즉 내부의 영적 타락이다. 유럽 교회 내에서 영적 학대 피해자들의 신음이 지도자들의 침묵과 외면 속에 묻히고 있다는 고발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아픈 지점을 찌른다. 양의 탈을 쓴 이리에게 상처 입은 양 떼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목자의 시대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증거한다.
여호수아가 이끌던 이스라엘은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승리를 경험했다. 그러나 곧이어 작은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만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으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원인이 적의 강함이 아닌 이스라엘 진영 내부에 숨겨진 죄악, 곧 아간의 탐욕 때문이었음을 밝히셨다. 아간 한 사람이 몰래 감춘 시날 산의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하나가 이스라엘 전체를 패배의 수치로 몰아넣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숨겨진 영적 학대와 권력 남용,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냉담함이야말로 아이성의 패배를 부르는 '아간의 장막'과 다르지 않다. 이 죄악을 도려내지 않고서는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 번째 과업은 세상을 향해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집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깨어진 성벽을 재건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의 눈물로 스스로를 씻으며, 공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이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과 정화의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 앞에 거룩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어두운 시대의 지평선 너머로 희망의 빛 또한 비치고 있다. 네덜란드의 젊은이들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와 안정을 찾고 있으며,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광장은 복음을 위한 미답의 선교지가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다음 세대를 일으키시고 새로운 길을 열고 계신다. 그러나 이 소명은 정결한 손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다. 상처 입고 병든 군대로는 새로운 땅을 정복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안과 밖의 도전에 직면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아간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사도 베드로의 엄중한 경고가 오늘 우리의 심령을 꿰뚫는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베드로전서 4:17-18)
먼저 우리 자신을 심판의 빛 아래 세우는 철저한 회개를 통해 거룩함을 회복하고, 그때 비로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견고한 성채도 외부의 공격이 아닌 내부의 부패와 배신으로 무너지는 법이다. 작금의 교회가 마주한 더 심각한 위기는 밖에서 오는 파도가 아니라, 배 밑바닥에서부터 새어 들어오는 차가운 물, 즉 내부의 영적 타락이다. 유럽 교회 내에서 영적 학대 피해자들의 신음이 지도자들의 침묵과 외면 속에 묻히고 있다는 고발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아픈 지점을 찌른다. 양의 탈을 쓴 이리에게 상처 입은 양 떼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목자의 시대는 그 자체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음을 증거한다.
여호수아가 이끌던 이스라엘은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위대한 승리를 경험했다. 그러나 곧이어 작은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배하고 만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으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원인이 적의 강함이 아닌 이스라엘 진영 내부에 숨겨진 죄악, 곧 아간의 탐욕 때문이었음을 밝히셨다. 아간 한 사람이 몰래 감춘 시날 산의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하나가 이스라엘 전체를 패배의 수치로 몰아넣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숨겨진 영적 학대와 권력 남용,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냉담함이야말로 아이성의 패배를 부르는 '아간의 장막'과 다르지 않다. 이 죄악을 도려내지 않고서는 세상과의 영적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 번째 과업은 세상을 향해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집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깨어진 성벽을 재건해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의 눈물로 스스로를 씻으며, 공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 이 고통스러운 자기 성찰과 정화의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교회는 세상 앞에 거룩한 권위를 회복할 수 있다.
놀랍게도 이 어두운 시대의 지평선 너머로 희망의 빛 또한 비치고 있다. 네덜란드의 젊은이들이 혼란한 세상 속에서 신앙을 통해 삶의 의미와 안정을 찾고 있으며,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광장은 복음을 위한 미답의 선교지가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도 다음 세대를 일으키시고 새로운 길을 열고 계신다. 그러나 이 소명은 정결한 손과 깨끗한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다. 상처 입고 병든 군대로는 새로운 땅을 정복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안과 밖의 도전에 직면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아간의 장막을 걷어내야 한다. 사도 베드로의 엄중한 경고가 오늘 우리의 심령을 꿰뚫는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베드로전서 4:17-18)
먼저 우리 자신을 심판의 빛 아래 세우는 철저한 회개를 통해 거룩함을 회복하고, 그때 비로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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