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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검투장인가, 겟세마네의 기도인가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19 08:30

본문

오늘의 지면은 세계 교회가 마주한 두 갈래의 길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스페인 전역 45곳의 신자들이 광장과 예배당에 모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며 국가를 위해 무릎 꿇는 기도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다른 한편에서는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겠다는 한 정치 지도자의 구호가 고대 로마 검투사의 승리처럼 여겨지며, 그와 연대한 복음주의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번지고 있다. 세상의 권력과 연대하여 ‘위대함’을 쟁취하려는 유혹과, 세상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나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기도의 길. 교회는 지금 이 두 개의 상이한 풍경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권력의 유혹은 달콤하다. 세속 정치와 손잡고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명분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유럽의 비평가들이 지적하듯, 상대를 굴복시키고 굴욕감을 안기는 방식의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아닌, 이교도 로마 제국의 방식이다. 교회가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의 정상에 서려 할 때, 그 손에 들리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황제의 칼이다. 스페인 성공회 일부 사제가 동양 철학과 비의주의에 심취하고, 세속 언론이 교회를 조롱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현상은 교회가 자신의 영적 권위를 잃고 세상의 가치와 혼합될 때 어떤 혼란이 야기되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예표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등장하는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이러한 교회의 비극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16세기 스페인 세비야, 이단의 화형식이 거행되던 광장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찾아오신다. 그러나 그를 맞이한 늙은 대심문관은 예수를 차가운 감옥에 가두고는 이렇게 질책한다. “당신은 왜 다시 와서 우리를 방해하는 거요?” 대심문관은 예수가 광야에서 사탄의 세 가지 시험, 즉 돌을 빵으로 만드는 기적,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신비, 그리고 세상 권세에 대한 경배를 거절한 것이 큰 실수였다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가 당신의 ‘실수’를 바로잡고, 백성에게 빵과 기적과 권위를 줌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고 역설한다. 자유라는 무거운 짐 대신 복종의 안락함을 선사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겟세마네의 길 대신 로마의 길을 선택한 교회의 가장 깊은 자기 고백이다.

이러한 대심문관의 유혹 앞에, 스페인 광장에 모인 기도 운동은 교회가 나아갈 길을 밝히는 등불과 같다. 그들은 정치적 승리를 구하지 않았다.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겸손히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교회의 본질적인 힘이다. 세상의 검투장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신 주님을 따르는 것.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광장에서 청소년들의 영혼이 위협받는 시대에, 교회가 제공해야 할 것은 더 자극적인 콘텐츠가 아니라 진정한 관계와 소속감을 주는 영적 공동체이며, 이는 오직 기도의 골방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국 교회는 오늘 어디에 서 있는가. 정치의 계절마다 특정 이념의 선봉에 서서 로마의 검투사를 자처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속적 성공과 ‘위대함’이라는 신기루를 좇다가 대심문관의 길로 들어서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의 참된 위대함은 세상의 권력을 덧입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권력을 버리고 스스로를 비우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데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5-8). 이것이 교회가 붙들어야 할 유일한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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