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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 꿇는 위대함, 교회가 회복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18 08:30

본문

세상은 더 큰 힘, 더 높은 지위, 더 완벽한 시스템을 갈망하며 ‘위대함’을 외친다. 그러나 6·3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인간이 세운 제도의 필연적 한계를 노출했고, ‘위대한 미국’을 향한 구호 속에서 발견되는 이교도적 지배의 그림자는 세상이 추구하는 위대함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 힘의 논리와 지배의 욕망이 점철된 세상의 노래는 결국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올 뿐이다.

고대 로마의 개선식(Triumphus)을 떠올려보라. 승리한 장군은 화려한 전차를 타고 로마 시내를 행진했다. 그의 뒤로는 막대한 전리품과 쇠사슬에 묶인 포로들이 따랐다. 시민들은 환호하며 정복자의 발아래 꽃을 던졌다. 이것이 세상이 정의하는 위대함이다. 상대를 굴복시키고, 그들의 고통을 나의 영광으로 삼는 잔인한 승리의 서사다. 이러한 위대함은 더 큰 폭력과 더 깊은 증오를 낳는 비극의 씨앗일 뿐, 진정한 평화나 생명을 잉태하지 못한다.

그러나 최근 월드컵 경기장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위대함이 목격되었다. 7대 1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로 승자와 패자가 갈린 그라운드 위에서, 독일과 퀴라소 선수들은 적대감을 넘어 함께 무릎을 꿇었다. 경쟁의 함성이 멎은 그곳에서, 그들은 승패를 초월한 하나님 나라의 형제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했다. 이는 로마의 개선식과는 정반대의 풍경이다. 지배가 아닌 연대, 굴복이 아닌 섬김, 환호가 아닌 기도가 그 자리를 채웠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작은 나라 퀴라소 선수들이 경기 전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고, 스페인 전역의 신자들이 나라를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며, 한 평생을 동유럽 선교에 바친 안네-마리 쿨 선교사의 삶이 증언하는 것은 바로 이 ‘무릎 꿇는 위대함’이다.

이 위대함의 원형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권세자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셨다. 제자들이 권력의 서열을 다툴 때, 주님은 섬김의 도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2-45).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세상의 성공 신화와 힘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위대함’을 과시하려 하지는 않는가. 소셜 미디어의 금지 조치가 논의될 만큼 다음 세대가 위태로운 시대에, 교회의 역할은 세상의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스페인 성공회 내부의 이단적 혼란은 교회가 진리의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잃을 때 얼마나 쉽게 세속의 가치에 잠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경고다. 이제 한국 교회는 세상의 개선식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대신 상처 입은 이웃의 곁에서 함께 무릎 꿇고, 분열된 사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섬김의 위대함을 회복해야 한다. 그 겸손한 무릎 위에,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영광이 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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