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에서 다시 세우는 언약, 무너진 성벽을 넘어 거룩한 공동체로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10 08:30
본문
오늘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마주한 소식들은 혼돈스러운 교향곡과 같다. 한편에서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민족의 영적 쇄신을 촉구하는 ‘길갈로 가자’는 외침이 울려 퍼지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지도자의 도덕적 실패와 신학적 노선 차이로 인한 교회의 분열이라는 파열음이 들려온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가 스스로의 상처와 균열로 신음하는 현실은 깊은 탄식을 자아낸다.
지도자의 타락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기며, 성도들의 믿음의 근간을 흔드는 영적 지진과도 같다. 또한, 신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결단이라 할지라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분열의 모습은 세상에 교회의 하나 됨을 증거하지 못하는 아픔으로 남는다. 이 모든 현상은 교회가 거룩성과 공동체성이라는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자기 고백이다.
이러한 때에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사무엘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온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열두 돌을 세우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할례를 행하며 정체성을 재확인했던 장소다. 그곳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지였다.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 또한 영적 길갈로 돌아가, 십자가의 은혜라는 반석 위에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치 정권 아래 독일 교회가 히틀러에게 굴복하며 신앙의 본질을 상실해 갈 때,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Life Together)을 통해 참된 교회의 모습을 역설했다. 그는 인간적인 욕망과 이상으로 가득 찬 ‘꿈의 공동체’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하는 ‘영적 실재로서의 공동체’를 강조했다. 본회퍼에게 교회 공동체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서로의 죄와 연약함을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현장이었다. 암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그가 제시한 것은 거대한 정치적 담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에게 복종하고 섬기는 작은 ‘고백교회’ 공동체의 회복이었다. 바로 이 거룩한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고 그는 믿었다.
본회퍼의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지도자의 실패는 더욱 투명하고 견고한 상호 책임의 공동체를 통해 예방하고 치유해야 한다.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지체들의 아픔은 가족과 교회가 함께 짊어지는 연대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신학적 갈등 역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는 겸손한 노력 안에서 비로소 생산적인 논의로 승화될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내적 순결과 유기적 연합을 회복할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한 우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생명의 울림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무너진 성벽을 보며 통곡하던 느헤미야의 심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길갈의 언약을 새롭게 해야 할 때다.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열망이 우리 모두에게 다시 불타오르기를 소망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1-3).
지도자의 타락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에 깊은 상흔을 남기며, 성도들의 믿음의 근간을 흔드는 영적 지진과도 같다. 또한, 신앙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결단이라 할지라도,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분열의 모습은 세상에 교회의 하나 됨을 증거하지 못하는 아픔으로 남는다. 이 모든 현상은 교회가 거룩성과 공동체성이라는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렬한 자기 고백이다.
이러한 때에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는 사무엘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다가온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며 열두 돌을 세우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할례를 행하며 정체성을 재확인했던 장소다. 그곳은 인간의 노력이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지였다.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 또한 영적 길갈로 돌아가, 십자가의 은혜라는 반석 위에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치 정권 아래 독일 교회가 히틀러에게 굴복하며 신앙의 본질을 상실해 갈 때,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저서 ‘성도의 공동생활’(Life Together)을 통해 참된 교회의 모습을 역설했다. 그는 인간적인 욕망과 이상으로 가득 찬 ‘꿈의 공동체’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하는 ‘영적 실재로서의 공동체’를 강조했다. 본회퍼에게 교회 공동체는 인간의 노력으로 만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서로의 죄와 연약함을 짊어지고 그리스도의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현장이었다. 암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그가 제시한 것은 거대한 정치적 담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서로에게 복종하고 섬기는 작은 ‘고백교회’ 공동체의 회복이었다. 바로 이 거룩한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고 그는 믿었다.
본회퍼의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지도자의 실패는 더욱 투명하고 견고한 상호 책임의 공동체를 통해 예방하고 치유해야 한다.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하는 지체들의 아픔은 가족과 교회가 함께 짊어지는 연대를 통해 극복될 수 있다. 신학적 갈등 역시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는 겸손한 노력 안에서 비로소 생산적인 논의로 승화될 수 있다. 교회가 이러한 내적 순결과 유기적 연합을 회복할 때, 비로소 세상을 향한 우리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생명의 울림이 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무너진 성벽을 보며 통곡하던 느헤미야의 심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길갈의 언약을 새롭게 해야 할 때다.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거룩한 열망이 우리 모두에게 다시 불타오르기를 소망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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