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에서 다시 세우는 언약, 폐허 위에 깃발을 들라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08 08:30
본문
6월, 호국보훈의 달은 우리에게 역사의 상흔과 희생을 기억하게 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는 새로운 포연과 이념의 전쟁, 생명 경시의 풍조로 깊이 신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교회는 미사일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독일의 교회는 급진 세력의 증오 앞에 지역사회를 섬기던 문을 닫는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이 통계 수치 속에서 무너져 내리고, 로마 가톨릭은 인본주의적 해법을 제시하며 신학적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 암울한 시대의 한복판에서,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의 목회서신은 잠든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나팔소리와 같이 울려 퍼진다.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길갈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장소였다. 요단강을 가르신 하나님의 기적을 기념하는 열두 돌이 세워진 곳이며, 광야 세대가 할례를 통해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성결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가나안 정복을 위한 거룩한 군대로 거듭났다. 오늘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길갈의 영성'이다. 세상의 풍요와 안락함 속에서 잊어버린 첫사랑의 언약을 기억하고, 세속적 가치관에 무뎌진 신앙의 칼날을 다시 벼리는 영적 쇄신이 절실하다.
역사는 교회가 길갈에 섰을 때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음을 증언한다. 1934년 5월, 나치즘의 광기가 독일 전역을 휩쓸고 소위 '독일 기독교인'들이 히틀러에게 맹종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더럽힐 때, 저항하는 신앙인들은 바르멘에 모였다. 그들은 신학자 칼 바르트가 초안한 '바르멘 신학선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듣고, 삶과 죽음에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임을 선포하며, 국가와 총통을 우상으로 섬기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저항이 아니었다. 교회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세상의 권세 앞에 목숨을 걸고 증언한 신앙고백이자, 시대의 폐허 위에서 다시 세운 언약의 기둥이었다.
바르멘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러시아의 미사일이 교회를 파괴하고, 독일의 무신론자들이 교회의 문을 닫게 만드는 물리적 박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논하며 은연중에 복음의 자리를 인본주의로 대체하려는 신학적 도전 앞에서 우리는 어떤 진리를 붙들어야 하는가. 인구 15만의 작은 나라 퀴라소 대표팀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며 거대한 도전에 맞서는 믿음, 그것이 바로 바르멘의 정신이며 길갈의 영성이다. 사역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에 귀 기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길갈에 세워야 할 열두 돌이다.
사무엘은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을 길갈로 불러 모았다. 승리에 도취해 교만해지거나, 과거의 실패에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고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외쳤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하니라" (사무엘상 11:14). 한국 교회는 지금 영적 길갈에 서야 할 때다. 호국영령의 피와 믿음의 선진들이 흘린 순교의 눈물을 기억하며, 무너진 신앙의 제단을 수축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혼란스러울지라도, 길갈에서 언약을 새롭게 한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폐허 위에서, 오직 십자가의 깃발을 다시 높이 들어야 한다.
길갈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장소였다. 요단강을 가르신 하나님의 기적을 기념하는 열두 돌이 세워진 곳이며, 광야 세대가 할례를 통해 언약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한 성결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가나안 정복을 위한 거룩한 군대로 거듭났다. 오늘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이 '길갈의 영성'이다. 세상의 풍요와 안락함 속에서 잊어버린 첫사랑의 언약을 기억하고, 세속적 가치관에 무뎌진 신앙의 칼날을 다시 벼리는 영적 쇄신이 절실하다.
역사는 교회가 길갈에 섰을 때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음을 증언한다. 1934년 5월, 나치즘의 광기가 독일 전역을 휩쓸고 소위 '독일 기독교인'들이 히틀러에게 맹종하며 교회의 순수성을 더럽힐 때, 저항하는 신앙인들은 바르멘에 모였다. 그들은 신학자 칼 바르트가 초안한 '바르멘 신학선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듣고, 삶과 죽음에서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임을 선포하며, 국가와 총통을 우상으로 섬기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저항이 아니었다. 교회가 무엇이며,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세상의 권세 앞에 목숨을 걸고 증언한 신앙고백이자, 시대의 폐허 위에서 다시 세운 언약의 기둥이었다.
바르멘의 외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하다. 러시아의 미사일이 교회를 파괴하고, 독일의 무신론자들이 교회의 문을 닫게 만드는 물리적 박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가.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논하며 은연중에 복음의 자리를 인본주의로 대체하려는 신학적 도전 앞에서 우리는 어떤 진리를 붙들어야 하는가. 인구 15만의 작은 나라 퀴라소 대표팀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며 거대한 도전에 맞서는 믿음, 그것이 바로 바르멘의 정신이며 길갈의 영성이다. 사역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에 귀 기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한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길갈에 세워야 할 열두 돌이다.
사무엘은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백성을 길갈로 불러 모았다. 승리에 도취해 교만해지거나, 과거의 실패에 낙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언약을 갱신하고 나라를 새롭게 하자고 외쳤다. "사무엘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길갈로 가서 나라를 새롭게 하자 하니라" (사무엘상 11:14). 한국 교회는 지금 영적 길갈에 서야 할 때다. 호국영령의 피와 믿음의 선진들이 흘린 순교의 눈물을 기억하며, 무너진 신앙의 제단을 수축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혼란스러울지라도, 길갈에서 언약을 새롭게 한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폐허 위에서, 오직 십자가의 깃발을 다시 높이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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