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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위에 새기는 소망, 흔들리는 세상 속 교회의 사명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6-0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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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키이우의 교회 위로 러시아의 미사일이 떨어지고, 독일 라이프치히에서는 복음을 전하던 교회의 카페가 급진 세력의 끈질긴 공격 끝에 문을 닫는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져 낙태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세상은 죄와 분쟁의 무게 아래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파열음 속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성’을 지키자는 로마 교황의 선언은, 비록 선한 의도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계시의 반석이 아닌 인본주의의 모래 위에 집을 지으려는 위태로운 시도로 비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11월 14일 밤, 독일 공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영국 코번트리(Coventry)시는 잿더미가 되었다. 고딕 양식의 장엄함을 자랑하던 성 마이클 대성당 역시 앙상한 외벽만 남긴 채 처참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전후, 코번트리 시민들과 교회는 심오한 신앙적 결단을 내렸다. 그들은 폐허를 치우는 대신,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어리석음을 증언하는 기념비로 보존하기로 했다. 당시 주임사제였던 리처드 하워드는 무너진 제단 뒤편 벽에 ‘아버지여, 용서하소서(Father, Forgive)’라는 두 단어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불에 탄 성당 지붕의 대들보 두 개를 주워 십자가를 만들었다. 복수가 아닌 용서와 화해의 상징으로 폐허 옆에 세워진 새 성당과 더불어, 이 ‘잿더미의 십자가’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피어난 부활의 소망을 온 세상에 증거하고 있다.

코번트리의 이 이야기는 오늘날 교회가 걸어가야 할 길을 비추는 등불과 같다. 포화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키이우의 교회는 바로 이 시대의 코번트리이며, 파괴의 현장에서 당신의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한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선조들의 희생과 눈물을 기억하자는 한국교회를 향한 호소는, 우리가 서 있는 번영의 터전이 한때 전쟁의 폐허였음을 잊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했던 첫 신앙을 회복하라는 요청이다. 끈질긴 핍박에 직면한 독일의 교회가 내려야 할 결단 역시, 단순히 카페 문을 닫는 것을 넘어, 코번트리처럼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방식으로 화해의 복음을 증거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영적 고뇌여야 한다.

세상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정교한 프로그램과 세련된 인본주의적 가치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는 자칫 사역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현대 교회의 가장 큰 함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교회의 참된 능력은 세상적 성공이나 영향력이 아닌, 지극히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들 속에서 발견된다. 인구 15만의 작은 나라 퀴라소 축구팀이 드리는 담대한 찬양 속에서, 한 선수가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주는 성령의 열매인 친절 속에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발칸의 로마 민족을 향한 이름 없는 선교의 발걸음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지고 있다. 이는 세상의 제국이 아닌, 신령한 집을 짓는 거룩한 사역이다.

교회의 기초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고상한 이상이 아니라, 세상이 버렸으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보배로운 산 돌, 예수 그리스도시다. 전례 없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교회의 사명은 인본주의라는 무른 회반죽으로 무너져가는 세상의 벽을 덧바르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굳건히 서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선포했듯, 우리는 바로 이 사명을 위해 부름받았다.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베드로전서 2:4-5). 이 어두운 시대에 한국교회는 다른 모든 터를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반석 위에 서야 한다. 세상의 폐허 위에서 인간의 위대함이 아닌, 하나님의 영원하신 은혜와 용서를 새기는 참된 영적 건축자로 일어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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