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 교회의 길을 묻다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03 08:30
본문
영국의 해변에서 2,7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130여 명의 영혼이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는 감격적인 소식이 들려오는 한편, 스페인 의회에서는 목회적 돌봄과 상담마저 범죄로 규정하려는 냉혹한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쪽에서는 생명의 환호가, 다른 한쪽에서는 신앙의 자유를 옥죄는 족쇄 소리가 들려오는 오늘의 현실은 혼돈 속에서 교회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깊이 묻게 한다.
세속화의 심장부로 여겨졌던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어둠이 깊을수록 오히려 작은 빛이 더욱 선명해짐을 증거한다. 영국 본머스 해변의 세례식은 제도권 교회를 떠났던 이들의 영적 갈증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폴란드에 모인 유럽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각국의 험난한 영적 전쟁 속에서도 동역의 끈을 놓지 않으며 함께 울고 함께 지혜를 구하고 있다. 심각한 에너지 위기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쿠바의 암흑 속에서는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흐르는 복음의 메시지가 절망에 빠진 이들의 유일한 빛과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중세의 깊은 영적 암흑기 속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알프스의 이스라엘’, 발도파(Waldensians)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2세기 리옹의 부유한 상인 피터 발도로부터 시작된 이들은 오직 성경의 권위만을 인정하며 청빈과 복음 전파의 삶을 살았다. 이로 인해 그들은 수백 년간 가톨릭교회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며 알프스 산맥의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박해의 불길 속에서도 신앙의 등불을 끄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빛이 빛난다(Lux lucet in tenebris)’는 신조를 가슴에 새기며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끈질긴 저항과 순결한 믿음은 훗날 종교개혁의 새벽을 여는 귀한 밀알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마주한 도전은 발도파가 겪었던 물리적인 박해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스페인의 사례처럼, 세속적 인본주의는 ‘관용’과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윤리를 해체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혐오’로 낙인찍는다.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는 목회자들이 소진되어 쓰러지고 있으며, 신앙의 문턱에 서서 교회 안으로 깊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외부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동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교회는 세상의 파도에 맞서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때다. 우리의 힘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사회적 명망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국 해변의 세례식처럼, 오직 복음의 능력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살린다. 쿠바의 라디오 선교처럼,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말씀은 생명의 통로가 된다. 목회자에게는 쉼을 통한 영적 재충전이, 성도들에게는 진정한 교제를 통한 위로와 격려가 절실하다. 발도파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성경을 필사하며 신앙을 지켰듯, 우리 또한 다시 말씀의 빛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법의 족쇄를 채우려 할지라도, 교회는 묵묵히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내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요한은 기록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5)
세속화의 심장부로 여겨졌던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어둠이 깊을수록 오히려 작은 빛이 더욱 선명해짐을 증거한다. 영국 본머스 해변의 세례식은 제도권 교회를 떠났던 이들의 영적 갈증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폴란드에 모인 유럽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각국의 험난한 영적 전쟁 속에서도 동역의 끈을 놓지 않으며 함께 울고 함께 지혜를 구하고 있다. 심각한 에너지 위기로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쿠바의 암흑 속에서는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흐르는 복음의 메시지가 절망에 빠진 이들의 유일한 빛과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중세의 깊은 영적 암흑기 속에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 했던 ‘알프스의 이스라엘’, 발도파(Waldensians)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12세기 리옹의 부유한 상인 피터 발도로부터 시작된 이들은 오직 성경의 권위만을 인정하며 청빈과 복음 전파의 삶을 살았다. 이로 인해 그들은 수백 년간 가톨릭교회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받았고, 수많은 순교의 피를 흘리며 알프스 산맥의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박해의 불길 속에서도 신앙의 등불을 끄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빛이 빛난다(Lux lucet in tenebris)’는 신조를 가슴에 새기며 묵묵히 믿음의 길을 걸었다. 그들의 끈질긴 저항과 순결한 믿음은 훗날 종교개혁의 새벽을 여는 귀한 밀알이 되었다.
오늘날 교회가 마주한 도전은 발도파가 겪었던 물리적인 박해와는 다른 양상을 띤다. 스페인의 사례처럼, 세속적 인본주의는 ‘관용’과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윤리를 해체하고 교회의 가르침을 ‘혐오’로 낙인찍는다. 동시에 교회 내부에서는 목회자들이 소진되어 쓰러지고 있으며, 신앙의 문턱에 서서 교회 안으로 깊이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등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외부의 공격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동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교회는 세상의 파도에 맞서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때다. 우리의 힘은 정치적 영향력이나 사회적 명망에서 나오지 않는다. 영국 해변의 세례식처럼, 오직 복음의 능력만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공동체를 살린다. 쿠바의 라디오 선교처럼, 어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말씀은 생명의 통로가 된다. 목회자에게는 쉼을 통한 영적 재충전이, 성도들에게는 진정한 교제를 통한 위로와 격려가 절실하다. 발도파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성경을 필사하며 신앙을 지켰듯, 우리 또한 다시 말씀의 빛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세상이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법의 족쇄를 채우려 할지라도, 교회는 묵묵히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내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사명이 있다. 요한은 기록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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