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없는 진리,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빛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19 08:30
본문
오늘 우리에게 도착한 소식들은 혼돈스러운 시대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보고서가 경고한 전 세계적인 학업 능력 저하는 단순히 교육 시스템의 실패를 넘어, 가치관과 가정, 사회 전반이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음을 알리는 적신호다. 이처럼 근간이 흔들리는 시대 속에서, 신앙의 본질은 더욱 집요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러시아는 점령지에서 정교회를 폭력적인 통제의 수단으로 '무기화'하고, 북아일랜드의 법률은 모든 신념이 동등하게 유효하다는 미명 아래 진리의 고유성을 해체하려 시도한다. 거대한 담론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 깊숙한 곳에서도 진리는 시험대에 오른다. 편의를 위해 무심코 내뱉는 “지금 자리에 없다”는 작은 거짓말은, 진리의 허리띠를 풀어버리는 위험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유혹이 자리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의 입을 빌려 이 유혹의 정체를 폭로했다. 대심문관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라는 거친 진리 대신, 인간에게 빵과 안정, 그리고 기적이라는 달콤한 선물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준 ‘자유’가 감당하기 힘든 짐일 뿐이며, 사람들은 진리보다 안락한 복종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절대 진리를 고집하는 대신, 모두가 만족할 만한 상대적 진리를 수용하고, 불편한 회개 대신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며, 좁은 길 대신 넓고 편한 길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작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유혹과,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신앙을 변질시키는 타락은 모두 ‘대심문관의 입맞춤’과 같은, 진리를 향한 배반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뿌리를 갖는다.
그러나 절망의 소식 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스며 나온다. 영국 교회에서 복음주의적 신념을 확고히 견지하는 교회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세상의 소음에 굴하지 않는 선명한 진리의 외침이 여전히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 앞에서 창조-타락-구속의 성경적 세계관으로 해답을 찾으려는 이탈리아 신학자들의 노력은, 교회가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며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의 빛으로 시대를 조명하고 이끌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일깨운다. 이 사명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더 이상 연민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필수적인 동역자로 세우는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진정성을 얻는다.
결국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힘은 일상의 작은 순종에서 시작된다. 모든 신념이 동등하다는 세상의 속삭임 앞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담대히 선포하고, 불의한 권력이 신앙을 이용하려 할 때 단호히 저항하며,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정직하게 말하는 작은 용기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로 무장해야 할 때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에베소서 6:13-14)
한국 교회는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조각배가 아니라, 거친 풍랑 속에서도 길 잃은 영혼들을 인도하는 진리의 등대로 굳건히 서야 한다. 그 길은 오직 타협 없는 진리를 붙들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빛을 비추는 것을 통해 열릴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의 기저에는 인간의 근원적인 유혹이 자리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대심문관’의 입을 빌려 이 유혹의 정체를 폭로했다. 대심문관은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라는 거친 진리 대신, 인간에게 빵과 안정, 그리고 기적이라는 달콤한 선물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는 그리스도가 인류에게 준 ‘자유’가 감당하기 힘든 짐일 뿐이며, 사람들은 진리보다 안락한 복종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와 성도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절대 진리를 고집하는 대신, 모두가 만족할 만한 상대적 진리를 수용하고, 불편한 회개 대신 심리적 위안을 제공하며, 좁은 길 대신 넓고 편한 길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작은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유혹과,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신앙을 변질시키는 타락은 모두 ‘대심문관의 입맞춤’과 같은, 진리를 향한 배반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뿌리를 갖는다.
그러나 절망의 소식 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스며 나온다. 영국 교회에서 복음주의적 신념을 확고히 견지하는 교회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은, 세상의 소음에 굴하지 않는 선명한 진리의 외침이 여전히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는 능력이 있음을 증명한다. 또한,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 앞에서 창조-타락-구속의 성경적 세계관으로 해답을 찾으려는 이탈리아 신학자들의 노력은, 교회가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며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의 빛으로 시대를 조명하고 이끌어야 할 사명이 있음을 일깨운다. 이 사명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더 이상 연민의 대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필수적인 동역자로 세우는 실천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진정성을 얻는다.
결국 거대한 시대의 흐름을 바꾸는 힘은 일상의 작은 순종에서 시작된다. 모든 신념이 동등하다는 세상의 속삭임 앞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담대히 선포하고, 불의한 권력이 신앙을 이용하려 할 때 단호히 저항하며,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정직하게 말하는 작은 용기들이 모여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진리로 무장해야 할 때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에베소서 6:13-14)
한국 교회는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가는 조각배가 아니라, 거친 풍랑 속에서도 길 잃은 영혼들을 인도하는 진리의 등대로 굳건히 서야 한다. 그 길은 오직 타협 없는 진리를 붙들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빛을 비추는 것을 통해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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