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성벽과 남은 자들: 교회의 참된 본질을 묻다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17 08:30
본문
서구 기독교의 쇠퇴라는 익숙한 서사 속에서, 영국 복음주의의 견고한 생명력에 대한 소식은 마치 마른 뼈 골짜기에 생기가 도는 것과 같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한편에서는 교회가 정치 권력의 시녀가 되어 신앙을 무기화하는 참담한 현실이 펼쳐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교회의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혼돈의 파편들을 꿰어 맞출 때,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서 있는 좌표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영국 교회의 통계는 숫자의 허상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게 한다. 교회의 외형적 규모나 사회적 영향력의 축소가 곧 신앙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속화의 거센 파도 속에서 명목상의 신앙은 씻겨나가고, 복음의 핵심을 붙드는 ‘남은 자들(Remnant)’의 신실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교회의 생명력이 거대한 건물이나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닌, 살아있는 말씀 위에 굳건히 선 성도들의 믿음에 있음을 증명하는 엄중한 사실이다.
이러한 ‘남은 자들’의 모습은 신앙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러시아 정교회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점령지에서 특정 교파의 이름으로 다른 형제들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는, 예수가 아닌 가이사를 택한 대제사장들의 외침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포기하고 권력의 단맛에 취할 때 얼마나 끔찍한 괴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다.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교훈을 남겼다. 나치 정권 아래 독일교회가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소위 ‘독일적 기독교’라는 우상을 섬길 때, 디트리히 본회퍼를 중심으로 한 고백교회는 이에 맞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구분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 제자도 없는 세례, 십자가 없는 성찬이며, 당시 독일교회가 택한 길이었다. 반면 ‘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우리의 생명까지도 내어놓게 하는 복음의 본질이다. 고백교회는 바로 이 값비싼 은혜를 붙들었기에, 무너진 시대의 어둠 속에서 진리의 등불을 밝힐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도전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와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 ‘값싼 은혜’를 남발하며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우리의 시선으로 재단하며, 그들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교회의 진정한 사회 참여는 권력 투쟁의 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외면하는 이들을 품고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곳인지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다. 그 빛은 스스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이제 한국 교회는 무너진 성벽을 보며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신실하게 남은 자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의 방법으로 성벽을 재건하려는 유혹을 떨치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교회는 숨겨지지 않는 산 위의 동네처럼, 어두운 세상 속에서 희망을 비추는 진정한 빛으로 다시 서게 될 것이다.
영국 교회의 통계는 숫자의 허상 너머에 있는 본질을 보게 한다. 교회의 외형적 규모나 사회적 영향력의 축소가 곧 신앙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세속화의 거센 파도 속에서 명목상의 신앙은 씻겨나가고, 복음의 핵심을 붙드는 ‘남은 자들(Remnant)’의 신실함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교회의 생명력이 거대한 건물이나 화려한 프로그램이 아닌, 살아있는 말씀 위에 굳건히 선 성도들의 믿음에 있음을 증명하는 엄중한 사실이다.
이러한 ‘남은 자들’의 모습은 신앙을 권력의 도구로 전락시킨 러시아 정교회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점령지에서 특정 교파의 이름으로 다른 형제들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는, 예수가 아닌 가이사를 택한 대제사장들의 외침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되기를 포기하고 권력의 단맛에 취할 때 얼마나 끔찍한 괴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사례다.
역사는 우리에게 준엄한 교훈을 남겼다. 나치 정권 아래 독일교회가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소위 ‘독일적 기독교’라는 우상을 섬길 때, 디트리히 본회퍼를 중심으로 한 고백교회는 이에 맞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했다. 본회퍼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구분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 제자도 없는 세례, 십자가 없는 성찬이며, 당시 독일교회가 택한 길이었다. 반면 ‘값비싼 은혜’는 우리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우리의 생명까지도 내어놓게 하는 복음의 본질이다. 고백교회는 바로 이 값비싼 은혜를 붙들었기에, 무너진 시대의 어둠 속에서 진리의 등불을 밝힐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도전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사회적 영향력의 확대와 정치적 목적의 달성을 위해 ‘값싼 은혜’를 남발하며 세상과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우리의 시선으로 재단하며, 그들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교회의 진정한 사회 참여는 권력 투쟁의 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외면하는 이들을 품고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곳인지를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의 빛이다. 그 빛은 스스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이제 한국 교회는 무너진 성벽을 보며 절망할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신실하게 남은 자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세상의 방법으로 성벽을 재건하려는 유혹을 떨치고, 오직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교회는 숨겨지지 않는 산 위의 동네처럼, 어두운 세상 속에서 희망을 비추는 진정한 빛으로 다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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