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속에서 피는 생명의 꽃, 어둠을 이기는 빛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14 08:30
본문
오늘 우리는 세계의 양극단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동시에 접한다. 한편에서는 나이지리아 플래토주에서 울려 퍼지는 기독교인들의 비통한 절규가, 다른 한편에서는 세속화의 심장부로 여겨졌던 독일에서 들려오는 기쁨의 세례 찬송이 들려온다. 여기에 20여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류의 집단적 상흔으로 남은 9.11 테러의 기억은 이 시대가 처한 영적 현실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세상은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신음하고 있다. 무고한 이들의 피를 요구하는 증오와 자신의 땅을 넓히기 위해 이웃의 목숨을 빼앗는 탐욕은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온 어둠의 실체다. 나이지리아에서 자행된 30여 명의 학살은 단순히 종교 갈등이나 영토 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명백한 공격이다. 2001년 뉴욕의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연기는 단지 두 개의 건물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과 증오가 얼마나 끔찍한 파괴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 시대의 비극이었다. 이처럼 세상의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과 무력감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생명의 꽃을 피워내신 하나님의 신비를 증언한다. 2세기 로마 제국의 신학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그의 저서 '변증서(Apologeticus)'에서 박해받는 교회를 향해 불멸의 선언을 남겼다. “우리가 더 많이 베임을 당할수록, 우리의 수는 더 불어난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뿌리 뽑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잔혹한 방법을 동원했다. 신자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먹이가 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산 채로 불태워졌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교회는 곧 소멸될 운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마른 땅을 적시는 강물이 되었고, 그들의 죽음을 목도한 수많은 이방인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핍박의 칼날이 거셀수록 복음의 생명력은 더욱 왕성하게 타올랐던 것이다.
오늘날 독일에서 들려오는 세례자의 증가는 바로 이 '순교자의 피가 씨앗'이라는 진리의 현대적 증언이다. 수 세기 동안 유럽 교회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신학과 세속주의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이름 모를 수많은 성도들이 흘렸을 기도의 눈물과 믿음의 씨앗이 이제야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한 지방에서 복음주의 목회자가 지역의 문화적 별자리로 추대받는 소식 또한, 한 사람의 신실한 삶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지리아 성도들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피는 아프리카 대륙에 더 큰 영적 추수를 위한 씨앗이 될 것을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세상의 소식에 일희일비하며 좌절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박해받는 형제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부흥하는 교회를 보며 함께 기뻐해야 한다. 동시에 이 땅의 어둠을 직시하되, 그 어둠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빛을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노래하는 공동체이며, 죽음의 문화 속에서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 어떤 환난과 핍박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5-37)
세상은 여전히 죄의 권세 아래 신음하고 있다. 무고한 이들의 피를 요구하는 증오와 자신의 땅을 넓히기 위해 이웃의 목숨을 빼앗는 탐욕은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이어져 온 어둠의 실체다. 나이지리아에서 자행된 30여 명의 학살은 단순히 종교 갈등이나 영토 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파괴하려는 사탄의 명백한 공격이다. 2001년 뉴욕의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연기는 단지 두 개의 건물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과 증오가 얼마나 끔찍한 파괴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 시대의 비극이었다. 이처럼 세상의 소식은 우리로 하여금 절망과 무력감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생명의 꽃을 피워내신 하나님의 신비를 증언한다. 2세기 로마 제국의 신학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는 그의 저서 '변증서(Apologeticus)'에서 박해받는 교회를 향해 불멸의 선언을 남겼다. “우리가 더 많이 베임을 당할수록, 우리의 수는 더 불어난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Semen est sanguis Christianorum).” 당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뿌리 뽑기 위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잔혹한 방법을 동원했다. 신자들은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먹이가 되었고,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산 채로 불태워졌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교회는 곧 소멸될 운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순교자들이 흘린 피는 마른 땅을 적시는 강물이 되었고, 그들의 죽음을 목도한 수많은 이방인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놀라운 부흥의 씨앗이 되었다. 핍박의 칼날이 거셀수록 복음의 생명력은 더욱 왕성하게 타올랐던 것이다.
오늘날 독일에서 들려오는 세례자의 증가는 바로 이 '순교자의 피가 씨앗'이라는 진리의 현대적 증언이다. 수 세기 동안 유럽 교회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신학과 세속주의의 거센 파도 속에서도, 이름 모를 수많은 성도들이 흘렸을 기도의 눈물과 믿음의 씨앗이 이제야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스페인의 한 지방에서 복음주의 목회자가 지역의 문화적 별자리로 추대받는 소식 또한, 한 사람의 신실한 삶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이지리아 성도들의 순교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피는 아프리카 대륙에 더 큰 영적 추수를 위한 씨앗이 될 것을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세상의 소식에 일희일비하며 좌절하거나 안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박해받는 형제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부흥하는 교회를 보며 함께 기뻐해야 한다. 동시에 이 땅의 어둠을 직시하되, 그 어둠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빛을 바라보아야 한다. 교회는 세상의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희망을 노래하는 공동체이며, 죽음의 문화 속에서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 어떤 환난과 핍박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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