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는 무엇으로 세워지는가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9-08 08:30
본문
시대의 파고가 거세다. 22대 국회의 문턱에서 한국 교회와 시민 사회가 ‘거룩한 방파제’를 세우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는 소식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다. 기독교적 가치를 허무는 세속주의의 거센 물결 앞에서 교회가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고 악법의 제정을 온몸으로 막아서는 것은 마땅한 사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세우려는 그 방파제는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견고한 성벽이 때로는 가장 큰 허상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독일과의 국경에 ‘마지노선’이라는 철옹성의 요새를 구축했다. 강철과 콘크리트로 무장한 이 방어선은 난공불락의 상징이었고, 프랑스 국민에게 거짓된 평안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정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벨기에의 숲을 뚫고 프랑스의 심장부로 진격했다. 가장 완벽하다고 믿었던 방파제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프랑스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외부의 적을 막는 데 온 정신을 쏟는 동안, 변화하는 전쟁의 양상과 내부의 전략적 허점을 간과한 결과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법과 제도를 통해 밀려오는 세속적 파도를 막기 위한 외적인 방어선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분명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방파제 뒤편, 우리 사회와 교회 내부의 영적 지형은 어떠한가. 타로 카드와 수정, 명상과 같은 뉴에이지 영성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파고들며 공허한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 있다. 다음 세대 사역 현장은 텅 빈 그물 앞에서 좌절하고 있으며,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함께 그물을 던져야 할 동역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간다. 인공지능이라는 편리한 도구 앞에서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사역의 현장에서는 핵심을 잃은 말의 성찬이 넘쳐난다.
만약 우리가 법률적, 정치적 투쟁에만 매몰되어 이처럼 영혼의 지반이 침식되는 것을 방치한다면, 우리의 ‘거룩한 방파제’는 결국 모래 위에 세운 마지노선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방파제는 외부를 향한 투쟁의 구호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말씀에 대한 깊은 순종과 삶의 진실한 변화를 통해 구축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친히 그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태복음 7:24-27)
시대의 폭풍우 앞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혜로운 건축가의 자세다. 스페인 내전의 포화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이름 없는 개신교 여성의 붉은 심장처럼,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주님의 품에 안긴 목회자의 삶처럼, 우리의 믿음이 삶과 죽음을 초월한 진리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시간을 죽이는 헛된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시간을 거룩하게 사용하며, 덜 말하더라도 더 깊은 사랑과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세우는 방파제는 세상의 어떤 파도도 넘보지 못하는 견고한 구원의 보루가 될 것이다. 교회의 참된 힘은 외침의 크기가 아니라, 그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세우려는 그 방파제는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견고한 성벽이 때로는 가장 큰 허상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독일과의 국경에 ‘마지노선’이라는 철옹성의 요새를 구축했다. 강철과 콘크리트로 무장한 이 방어선은 난공불락의 상징이었고, 프랑스 국민에게 거짓된 평안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정작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군은 마지노선을 우회하여 벨기에의 숲을 뚫고 프랑스의 심장부로 진격했다. 가장 완벽하다고 믿었던 방파제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프랑스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외부의 적을 막는 데 온 정신을 쏟는 동안, 변화하는 전쟁의 양상과 내부의 전략적 허점을 간과한 결과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마주한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법과 제도를 통해 밀려오는 세속적 파도를 막기 위한 외적인 방어선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분명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다. 하지만 그 방파제 뒤편, 우리 사회와 교회 내부의 영적 지형은 어떠한가. 타로 카드와 수정, 명상과 같은 뉴에이지 영성이 젊은 세대의 마음을 파고들며 공허한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 있다. 다음 세대 사역 현장은 텅 빈 그물 앞에서 좌절하고 있으며,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 함께 그물을 던져야 할 동역의 목소리는 희미해져 간다. 인공지능이라는 편리한 도구 앞에서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분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사역의 현장에서는 핵심을 잃은 말의 성찬이 넘쳐난다.
만약 우리가 법률적, 정치적 투쟁에만 매몰되어 이처럼 영혼의 지반이 침식되는 것을 방치한다면, 우리의 ‘거룩한 방파제’는 결국 모래 위에 세운 마지노선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방파제는 외부를 향한 투쟁의 구호만으로 세워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석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말씀에 대한 깊은 순종과 삶의 진실한 변화를 통해 구축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친히 그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태복음 7:24-27)
시대의 폭풍우 앞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지혜로운 건축가의 자세다. 스페인 내전의 포화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이름 없는 개신교 여성의 붉은 심장처럼, 그리고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주님의 품에 안긴 목회자의 삶처럼, 우리의 믿음이 삶과 죽음을 초월한 진리 위에 서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시간을 죽이는 헛된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우리의 시간을 거룩하게 사용하며, 덜 말하더라도 더 깊은 사랑과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세우는 방파제는 세상의 어떤 파도도 넘보지 못하는 견고한 구원의 보루가 될 것이다. 교회의 참된 힘은 외침의 크기가 아니라, 그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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