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소명 사이에서, 교회의 길을 묻다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07-13 08:30
본문
한쪽에서는 문명의 심장을 할퀴는 거대한 불길이 모든 것을 재로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 인물이 국가의 정신을 재건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비극적인 산불 소식과 콜롬비아의 복음주의자 장관 임명 소식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 시대의 자화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향해 자신을 던졌던 한 수영선수의 이야기는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깊은 영적 질문을 던진다.
스페인의 산불은 단순히 외신 단신이 아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신음하며 마지막 날을 향해 달려가는 이 세상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압축한 파노라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는 허무함,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재앙의 위력 앞에서 우리는 세상의 유한함과 인간의 연약함을 처절하게 목도한다. 교회는 이처럼 불타는 세상의 한복판에 서서, 그저 기도만으로 소명을 다했다고 위안해서는 안 된다. 재난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신음은 곧 이 땅을 향한 교회의 책무가 무엇인지 묻는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콜롬비아의 소식은 한 줄기 빛과 같다. 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교육 수장으로 임명되어 ‘도덕적 재건’과 ‘전통적 가치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는 세속화의 거센 파도 앞에서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 사례다. 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성역(聖域)에 안주하는 것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거룩한 가치를 심는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시대적 소명 앞에서 주저하며 두려움에 갇혀 있다. 올림픽 7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고도 20년 뒤 다시 도전을 꿈꿨던 마크 스피츠의 열정은, 영원한 본향을 향해 달려가야 할 성도들의 나태한 신앙에 경종을 울린다. 세상의 명예를 위한 도전도 저토록 치열한데, 하물며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John Knox)는 부패한 권력과 우상숭배에 맞서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제게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제 생명을 거두어 가시옵소서!”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한 나라를 복음으로 뒤집는 영적 대폭발의 진원지가 되었다. 이는 세상의 목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야망이며,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믿음의 기백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경주를 어떻게 달려가야 할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1-2).
세상은 불타고 있다. 그러나 그 잿더미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사람들을 세워 일하신다. 한국 교회는 이제 안일함과 두려움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존 녹스의 심장으로 시대를 품고 기도하며, 스페인의 재난 현장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고, 콜롬비아의 새 장관처럼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담대하게 복음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때다.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리며, 오직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때, 교회는 비로소 불타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희망을 증거하는 방주가 될 것이다.
스페인의 산불은 단순히 외신 단신이 아니다. 그것은 죄로 인해 신음하며 마지막 날을 향해 달려가는 이 세상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압축한 파노라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불타 사라지는 허무함,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재앙의 위력 앞에서 우리는 세상의 유한함과 인간의 연약함을 처절하게 목도한다. 교회는 이처럼 불타는 세상의 한복판에 서서, 그저 기도만으로 소명을 다했다고 위안해서는 안 된다. 재난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신음은 곧 이 땅을 향한 교회의 책무가 무엇인지 묻는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콜롬비아의 소식은 한 줄기 빛과 같다. 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교육 수장으로 임명되어 ‘도덕적 재건’과 ‘전통적 가치 회복’을 기치로 내걸었다. 이는 세속화의 거센 파도 앞에서 교회가 어떻게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천적 사례다. 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성역(聖域)에 안주하는 것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삶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거룩한 가치를 심는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와 성도들은 이러한 시대적 소명 앞에서 주저하며 두려움에 갇혀 있다. 올림픽 7관왕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고도 20년 뒤 다시 도전을 꿈꿨던 마크 스피츠의 열정은, 영원한 본향을 향해 달려가야 할 성도들의 나태한 신앙에 경종을 울린다. 세상의 명예를 위한 도전도 저토록 치열한데, 하물며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는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16세기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John Knox)는 부패한 권력과 우상숭배에 맞서 “하나님, 스코틀랜드를 제게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제 생명을 거두어 가시옵소서!”라고 부르짖으며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한 나라를 복음으로 뒤집는 영적 대폭발의 진원지가 되었다. 이는 세상의 목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한 야망이며, 오늘날 우리가 회복해야 할 믿음의 기백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경주를 어떻게 달려가야 할지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권면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1-2).
세상은 불타고 있다. 그러나 그 잿더미 속에서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사람들을 세워 일하신다. 한국 교회는 이제 안일함과 두려움이라는 무거운 옷을 벗어 던져야 한다. 존 녹스의 심장으로 시대를 품고 기도하며, 스페인의 재난 현장을 긍휼의 눈으로 바라보고, 콜롬비아의 새 장관처럼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 담대하게 복음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때다.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달리며, 오직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볼 때, 교회는 비로소 불타는 세상 속에서 영원한 희망을 증거하는 방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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