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의 시대, 흔들리지 않는 교회의 길
마라나타 기자
작성일 2026-10-05 08:30
본문
시대의 좌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정치는 이념의 파편으로 흩어지고, 사회는 가치의 혼돈 속에서 표류하며, 개인의 삶은 예측 불가능한 파도에 휩쓸린다. 오늘 우리에게 당도한 소식들은 이러한 시대적 불안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독일 교회가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려는 고뇌에서부터, 10년간 개혁주의 신앙의 정체성을 수호해 온 신학적 분투, 그리고 혼란 속에서 오히려 복음의 기회를 발견하고 개인의 깨어진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는 신앙의 몸부림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식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이 분열과 혼돈의 시대에 교회는 어디에 서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가장 먼저 교회는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굳건히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리포만다 이니셔티브’가 지난 10년간 로마 가톨릭과의 신학적 대화 속에서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을 놓지 않으려 했던 노력은, 단지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문제다. 무엇을 믿고 고백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이해 없이는, 세상의 다양한 사상과 이념 앞에서 교회의 고유한 목소리는 희석되거나 흡수될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대신 영원한 진리의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거룩한 저항이다.
이처럼 확고한 신학적 토대 위에 선 교회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되, 세상의 방식에 물들지 않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독일복음주의연합이 ‘사회에 참여하되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인 입장을 천명한 것은 바로 이 지혜의 발현이다.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관점에서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책임감으로 세상을 섬기기 위한 거룩한 거리두기이다.
20세기 가장 어두운 역사의 현장이었던 구소련의 강제수용소 ‘굴라크’에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인간 실존의 밑바닥을 마주했다. 그는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이 국가나 계급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을 가로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의 광기가 모든 것을 파괴한 잿더미 위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정치적 해답이 아닌, 한 인간의 회심과 영적 쇄신이었다. 그의 문학은 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간증이 어떻게 한 시대의 거짓을 고발하고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는 등불이 될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솔제니친의 예는 거대한 신학적 담론과 공적 선언이 어떻게 성도 한 사람의 삶의 고백과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혼란한 세상이 영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삶의 계획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진정한 위로와 소망을 찾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화려한 건물이나 유창한 설교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살아내는 성도들의 삶 그 자체이다. 그들의 간증이 바로 세상이 목말라하는 복음의 능력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증언하는 교회의 본질이다. 베드로 사도는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한국 교회는 다시 이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신학적 순수성을 지키고, 정치적 중립성과 사회적 책임을 견지하며, 성도 개개인의 삶으로 복음을 증언할 때, 교회는 비로소 이 혼란한 시대 속에서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한 구원의 방주이자 진리의 등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교회는 자신의 신학적 정체성을 굳건히 세우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리포만다 이니셔티브’가 지난 10년간 로마 가톨릭과의 신학적 대화 속에서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을 놓지 않으려 했던 노력은, 단지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교회의 존재 이유와 직결된 문제다. 무엇을 믿고 고백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자기 이해 없이는, 세상의 다양한 사상과 이념 앞에서 교회의 고유한 목소리는 희석되거나 흡수될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은,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대신 영원한 진리의 말씀 위에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거룩한 저항이다.
이처럼 확고한 신학적 토대 위에 선 교회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되, 세상의 방식에 물들지 않는 지혜를 구해야 한다. 독일복음주의연합이 ‘사회에 참여하되 정치적으로는 독립적’인 입장을 천명한 것은 바로 이 지혜의 발현이다. 교회는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시녀가 되기를 거부하고, 오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관점에서 사회를 향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책임감으로 세상을 섬기기 위한 거룩한 거리두기이다.
20세기 가장 어두운 역사의 현장이었던 구소련의 강제수용소 ‘굴라크’에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모든 것을 빼앗긴 채 인간 실존의 밑바닥을 마주했다. 그는 그 극한의 고통 속에서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이 국가나 계급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마음을 가로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념의 광기가 모든 것을 파괴한 잿더미 위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정치적 해답이 아닌, 한 인간의 회심과 영적 쇄신이었다. 그의 문학은 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간증이 어떻게 한 시대의 거짓을 고발하고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는 등불이 될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솔제니친의 예는 거대한 신학적 담론과 공적 선언이 어떻게 성도 한 사람의 삶의 고백과 만나는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혼란한 세상이 영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삶의 계획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진정한 위로와 소망을 찾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화려한 건물이나 유창한 설교가 아닌, 예측 불가능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살아내는 성도들의 삶 그 자체이다. 그들의 간증이 바로 세상이 목말라하는 복음의 능력이 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증언하는 교회의 본질이다. 베드로 사도는 말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한국 교회는 다시 이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신학적 순수성을 지키고, 정치적 중립성과 사회적 책임을 견지하며, 성도 개개인의 삶으로 복음을 증언할 때, 교회는 비로소 이 혼란한 시대 속에서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한 구원의 방주이자 진리의 등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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