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에서 목회자까지, 하나님의 손길로 써내려간 인생”
전문요양센터 운영하며 해외선교 후원하는 한사랑교회 김봉임 목사
본문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대로, 작지만 건강한 신앙공동체 지향”
한사랑교회를 이끌고 있는 김봉임 목사의 신앙 여정은 시골 농촌 마을의 작은 집에서 시작됐다. 부모님이 농사일로 바빠 교회에 나가지 못하시는 상황에서도, 어린 김 목사는 골목 안 큰 집을 개조한 예배처소에서 신앙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기억도 없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시골 집을 교회로 삼아서 주일날만 예배드리는 곳이었는데, 엄마 말씀으로는 제가 교회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했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김 목사의 표정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유교적 전통이 강했던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켜나간 김 목사는 광주의 미션스쿨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 체험은 결혼 후 서울에서 산성교회를 다니면서 시작됐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깨달은 소명
“산성교회에서 교육부 소년부장을 맡으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됐어요. 한 달에 한 번씩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아이들이 수십명 넘게 모일 정도로 부흥했죠. 그런데 아이들에게 설교를 하다 보니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편의 허락을 받아 신학교에 진학한 김 목사는 처음에는 “사역은 안 하고 가르치는 것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졸업 무렵 몸이 아파지면서 자연스럽게 전도사 사역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걸어온 목회의 길
김 목사의 목회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며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었고, 한 개척교회에서는 10년간 사역하며 많은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목사님들이 새로 오시면 저를 좋게 보지 않아 힘들었어요.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기에 속속들이 알았기 때문이죠. 한번은 기도하는 것조차 문제 삼는 일도 있었죠. 그래도 ‘내가 이것을 못 한다고 그만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10년을 버텼어요.”
한때는 목회를 포기하고 기독교 방송국 후원센터에서 봉사하며 마음의 정리를 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의 짐, 이 길이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 때문에 다시 목회 현장으로 돌아왔다.
한사랑교회, 소수정예로 말씀 중심 사역
8년 전 시작된 한사랑교회는 김 목사와 한 성도, 단 두 명으로 출발했다. 현재도 많은 수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는 아니지만, 김 목사는 이를 오히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말씀 위주로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자는 모토로 계속 밀고 나가고 있어요. 주일 예배와 수요일, 금요일 예배는 빼먹지 않습니다. 코로나 때도 딱 한 주만 쉬었어요.”
김 목사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사도바울의 자비량 선교’ 모델이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사로도 활동하며 샤론방문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어르신들에게 요양사를 파견하는 일을 통해 교회 사역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면서도, 믿음이 있는 분들에게는 자연스럽게 기도를 해드리고 있다.

<사랑의교회 통해 후원하는 선교 편지 내용>
선교에 대한 열정과 다음 세대를 향한 고민
한사랑교회는 작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선교에 적극적이다. 필리핀 2곳, 러시아, 일본 등 여러 지역의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국내 선교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누군가 도와주기도 하고 먹을 것 걱정은 안 하잖아요. 하지만 해외 선교지는 정말 어려운 교회들이 많아서 선교 쪽에 치중하고 있어요.”
하지만 김 목사에게는 큰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성도들의 신앙이 깊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전에 비하면 너무 모든 게 갖춰져 있어요. 먹을 것도 풍족하고, 입을 것도 넘쳐나다 보니까 간절함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처음 신앙생활할 때는 어려워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됐는데, 지금은 그런 간절함이 부족하죠.”
어머니를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기적
김 목사의 신앙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20여 년 전 암으로 아팠을 때의 일이다. 당시 믿지 않던 어머니가 병원에서 놀라운 환상을 보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수술대에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이 빙 둘러있고, 가운데 파란 옷 입은 분이 계신 모습을 보셨어요. 예수님이 직접 수술하시는 장면이었죠. 그 후 어머니가 저에게 '너는 하나님의 딸이다. 하나님이 고쳐주신다'고 말씀했어요.”
김 목사는 평신도 때부터 철저하게 주일을 지키며 가족 행사보다 예배를 우선시했던 딸의 신앙을 보신 하나님이 어머니를 통해 역사하셨다고 믿고 있다. 3일 만에 완전히 회복된 후, 어머니는 천사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까지 보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문병 온 집사님들에게 '너희는 믿음이 좋다면서 안 보이냐?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천사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셨어요. 급할 때는 더 많은 천사를 보내주신다는 것을 그때 알았죠.”
이 경험을 통해 어머니는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셨고, 김 목사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해준 소중한 간증이 되었다.
“하나님이 하셔야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에요”
인터뷰 내내 김봉임 목사가 가장 자주 반복한 말은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대로”였다. 목회의 성과나 교회의 성장에 대한 조급함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목회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대로 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하셔야지만 되는 거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복지 사역과 목회를 병행하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김 목사의 표정에는 평안함이 흘러넘쳤다. 어려운 시기도 많았지만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게” 사역하고 있다는 그의 고백에서, 오랜 목회 여정을 통해 체득한 신앙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한사랑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화려한 성장이나 외적인 부흥이 아니라, 말씀 중심의 견고한 신앙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이다. 김봉임 목사와 한사랑교회 성도들의 진실하고 묵묵한 신앙의 여정이 지역사회에 어떤 선한 영향력을 끼쳐갈지 기대된다.
한사랑교회는 매주 주일 오전 예배와 오후 성경공부, 수요일과 금요일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어르신들을 위한 사회복지 사역과 해외 선교 후원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